나는 촌스럽게도 여행지에서 외국인을 관찰하는데 곧잘 마음을 빼앗긴다.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보는 것 마냥. 민족마다 조금씩 다른 외모도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와 다른 문화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계된 문화적 차이 같은 것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나이 드신 분에 대한 공경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 같다. 한 번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어떤 할아버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의 습관대로 그분에게 순서를 양보를 했는데 막상 그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관습대로 여성인 나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구나. 나는 그분의 양보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아마 그분도 누군가에게 동양인을 만난 경험을 즐겁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에서는 유독 여인들의 옷차림에 눈길이 갔다.
청바지에 티셔츠. 내가 가장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봄에는 긴 청바지와 긴 팔 셔츠, 여름에는 얇은 청반바지와 민소매, 가을에는 다시 가을에는 다시 얇은 청바지와 긴팔 티셔츠, 겨울에는 두꺼운 청바지와 스웨터. 당연히 색상 당연히 색상과 무늬에 깨알 같은 변화를 준다. 하늘색, 푸른색, 군청색 등등. 이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불편해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내 나름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원피스를 입는다. 원피스에 맞는 편안한 카디건 구입이 조금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일상복은 청바지다. 편하다는 이유로 물감을 비롯한 다양한 미술 재료에 쌓여 사느라 예쁜 옷을 입기 힘들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나는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복장을 고수해왔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여인들을 눈여겨본 것은 그네들의 남다른 패션 센스 때문이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그녀들이 참 잘 차려입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많은 것 같았다. 그녀들은 캐주얼보다 정장의 느낌이 나거나 드레스 차림의 옷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외부자의 눈에는 마치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전쟁과 평화 속 여인들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그녀들의 원피스의 그 우아함이라니.... 심지어 어린 소녀들조차 잘 갖춰 입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들을 통해 나의 패션의 여성성을 돌아보면서 옷이란 저리 입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면 나도 저렇게 우아하게 입어보겠다는 지킬 수 없는 결심까지 했으니까.
8월 15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모스크바에 들렀을 때, 그곳에는 벌써 가을이 오고 있었다. 입을 일 없을 것만 같았던 얇은 패딩을 캐리어에서 꺼내 입고 옹송그리며 모스크바 거리를 걷는 나.
나를 감동시켰던 아름다운 모스크바 여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해는 짧아지고 거리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