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미술을 일상에서 만나다 1

'메트로', 인민들의 지하궁전

by 김경희

지하궁전. 모스크바 지하철의 또 다른 표현.

'현재 12호선까지 운행 중인 모스크바 메트로는 '지하궁전'으로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해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METRO TOUR' 여행상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가이드 북의 모스크바 지하철에 대한 설명의 첫 문장이다. 우리나라의 지하철도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고, 각 역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인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지하궁전일까? 궁전이라 함은 전제주의 왕의 생활공간을 이르는 표현이 아니던가. 모스크바 지하철이 처음 건설된 시기는 스탈린 시절, 그러니까 소비에트 연합 시절. 이 표현은 모스크바 시민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아니면 모스크바 지하철을 이용한 외부 여행자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빠른 속도감, 깊은 메트로

인천 국제공항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약 9시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까지는 고속열차인 아에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하게 된다. 아에로 익스프레스로 공항에서 시내의 벨라루스 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여분. 이때 아에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착한 역은 메트로가 아니라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한 기차역. 모스크바 메트로를 이용하려면 여기서 다시 오 분여를 걸어 메트로 벨라루스까야 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서울을 돌아다닐 때도 그렇지만 모스크바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시간과 경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는 메트로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의 다음 여정이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지하철 노선이 모스크바만큼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를 좀 더 많이 이용했는데, 12개 노선의 모스크바의 메트로는 거미줄처럼 촘촘해서 여행객들이 가려는 곳 대부분은 메트로를 이용해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벨라루스까야 역의 출입구는 육중한 나무문이었다. 무거운 문을 힘겹게 밀어내고 역내로 들어서면 불과 몇 미터 앞에 개찰구가, 그리고 개찰구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보통 넓은 로비가 있는데 모스크바의 메트로는 로비가 없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화장실도 없었다. 오로지 지하철만이 있을 뿐이었다.)

입구 바로 옆에 붙은 까사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개찰구를 지나 조심조심 손에 땀을 쥐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에스컬레이터는 우리를 태우고 순식간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3년 5월 개통했다는 빠르끄 빠 베드이 역의 깊이는 무려 84m 깊이라고 하는데, 이 곳의 깊이는 어느 정도 일까? 전쟁이 터지면 방공호 역할도 한다는 모스크바 지하철. 비상계단도 안 보이는데 만일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어떻게 될까? 이 깊숙한 곳에서 지상까지 걸어올라 오는 걸까? 혹시 벽 속에 엘리베이터가 숨겨져 있나?

에스컬레이터의 이동 속도는 서울의 것과 비교가 안될 만큼 빨랐다. 이런 빠른 속도 때문인지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작은 부스가 있고, 그 안에는 에스컬레이터를 비춰주는 여러 개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직원이 앉아있었다. 모스크바의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왔음에도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일주일 후, 모스크바를 떠날 즈음, 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질까 봐 손에 땀을 쥐고 손잡이를 붙들고 서있었던 첫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메트로, 상상하게 하는

모스크바 메트로의 노선도는 독특하다. 노선도의 한가운데에는 밤색의 둥근 원이 떡 하니 놓여있다. 5호선이다. 함께 갔던 일행 중 한 친구의 이야기로는, 처음 메트로를 건설할 때 스탈린이 모스크바 지도 위에 컵을 올려놓고, 이 원을 중심으로 메트로 노선을 설계하라고 했다는데, 대도시의 지하철 노선 설계 결정 과정이라기엔 이야기의 내용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으로 봐서 떠도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이건 매우 탁월한 아이디어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머지 11개의 노선은 5호선을 한 번 이상 지나가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밤색의 이 5호선을 이용하면 어느 노선으로든 환승이 가능한 편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지하철 역 이름에는 예술가나 러시아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 있다. 우리말로 혁명 광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쁠로쉬챠드 레볼루치야역, 문학가인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을 딴 도스토옙스카야역, 러시아의 혁명시인 마야콥스카야의 이름을 딴 마야콥스카야역, 우크라이나의 수도 이름인 키에브를 붙인 키에브스카야역 등. 역의 이름만 들어도 어떤 주제의 역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나는 모스크바 지하철 역 여행의 백미는 쁠로쉬챠드 레볼루치야 역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이 역은 모스크바 지하철이 처음 만들어진 1938년에 건설된 역이라서 스탈린 시절 러시아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단 오래된 역이어서만이 아니라 역의 주제가 혁명이라 그 시대 러시아의 지향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자부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쁠로쉬챠드 레볼루치야(혁명광장)역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대부분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반대 방향의 지하철이 지나가게 설계되어있다. 만일 잘못 탔으면 내려서 바로 맞은편 열차를 타면 되는 구조이다. 혁명광장 역 역시 같은 구조인데, 바로 그 가운데 통로의 기둥과 벽을 중심으로 양쪽에 등신대 보다 조금 큰 크기의 청동상이 열주를 이루듯 도열해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지하철 안에!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여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란 말이다!

청동상은 역 이름 그대로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과 사회주의적 인간상이 다양하게 표현된 청동상들이었다. 총을 들고 있는 혁명전사는 물론 생산에 참여한 노동자, 농민의 모습과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모습까지. 한 마디로, 사회주의 혁명이 지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중 개를 안고 있는 군인 조각에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개의 머리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의 머리를 만지고 지나갔는지 표면이 하얗게 벗겨져 있었다. 이 조각품의 주변은 개의 머리를 만지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 듯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모스크바 사람들은 출구를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오래된 습관인 듯 놓치지 않고 조각상의 머리를 슥-만지고 지나간다. 잠시 멈춰 서서 뭔가를 기원하면서 정성껏 만지는 것이 아니라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가면서 북적이는 사람들의 사이로 팔을 뻗어 슬쩍 만지고 지나가는 식이다.

사회주의 조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만들었을 청동상. 아마 이 역을 만든 그 누구도 소비에트 연합이 현재와 같은 모습의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지하철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있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그리고 있음은 조각상뿐만 아니라 역을 장식하고 있는 장식으로도 알 수 있다. 환풍구나 벽에는 이삭 조각을 장식해놓았는데, 이 또한 생산과 관련된 상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개의 머리를 쓱 만직 지나가는 모스크바 시민과 이삭 장식


키에브스카야역 또한 소비에트 연합 시절의 러시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역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브의 이름을 붙인 키에브스카야역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를 볼 수 있다. 벽화에는 우크라이나 민족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화합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소비에트 연합은 글자 그대로 많은 위성국가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였고, 키에브스카야역은 러사아가 주변 위성국가와 이루고자 하는 이상의 모습, 또는 그 국가들에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더구나 키에프는 러시아 역사의 출발점이 되는 키에프공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 여러 가지 버전의 레닌 상을 만날 수 있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현실로 적용하여 러시아의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 이곳 메트로에서 레닌은 때로는 환조로, 때로는 벽에 돋을새김으로 장식된 부조로. 또 어느 곳에서는 인민들을 지도하는 모습의 모자이크로, 어느 곳에서는 청동상이나 석조 두상으로 모스크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주의 노선 포기 이후 광장의 거대한 레닌 동상은 대부분 철거되었다고 하지만, 메트로 깊숙한 곳에서 레닌은 지금도 불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모든 메트로 역이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메트로 역이 사회주의 이상을 그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역사가 있는 반면 사회주의를 포기한 이후에 지어진 역사도 당연히 있다. 외부 사람인 나에게 그들은 모스크바 메트로를 아름답게 건설하고자 하는 전통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내가 본 몇 개의 역으로 전체를 일반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메트로를 인민들의 지하궁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견 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궁전은 봉건시대 전제왕조의 생활공간을 이른다. 사실 근대 이전, 미술을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전제왕조와 귀족들이었다. 그렇다면 생산의 주체인 인민이 주인인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미술은 달라야 할 것이다. 전제주의 시대 미술이 국가의 주인인 왕의 공간을 장식하고 권위를 돋보도록 했다면 사회주의 러시아에서의 미술은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인민이기 때문에 인민의 공간인 메트로는 인민의 궁전 아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예술이 대다수 민중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미술의 이상에도 부합하는 것일 것이다.

스탈린 시대에 시작된 아름다운 지하세계, 메트로. 처음에는 인민들의 생활공간에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을 담는 것에서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러시아 만의 독특한 건축문화가 되어 아름다운 지하철 건설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여행을 다녀온 후 유튜브에서 러시아 관련 영상을 찾다 우연히 ebs영상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막으로 ‘모스크바 시민들이 지하궁전이라고 부르는’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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