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여행을 떠나다

by 김경희
낯선 곳을 향하여

나는 52세 아줌마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아이들을 키운 것이 내가 평생 해온 일의 전부.


해외여행은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일상에 묻혀 힘겹게 살아오기도 했고, 일찌감치 해외여행을 시작해 세계 곳곳을 다녀온 친구를 보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부럽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해외여행은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

2013년 만 48세의 여름, 대학교에 갓 입학한 딸아이를 앞세워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난생 처음 떠난 배낭여행이었다. 과제로 숨넘어가는 딸아이 대신 비행기 티켓을 사고 숙소를 예약하고, 배낭여행 초보 주제에 환불 받기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기차회사로부터 환불불가 최저가 티켓을 환불받는 신공을 뽑내며 떠난 이십 여일의 이탈리아 여행. 딸아이는 미술을 전공한 엄마의 문화재 사랑에 무척이나 힘들어했는데, 정작 나는 딸아이 눈치를 보느라 맘껏 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탈리아는 말하자면, 그때도 그렇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가 유일하게 여행한 서유럽 국가다.


두근두근, 러시아

첫 번째 배낭여행이었던 이탈리아 여행 삼 년 후인 2016년 여름, 나는 친한 동료의 러시아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발트 연안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까지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의 나에게 러시아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그때도 그랬지만 나는 지금도 러시아를 생각하면 젊은 시절 우연히 보았던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레핀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로 유명한데, 붉은 깃발을 들어올리는 청년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작은 도판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강렬해서 한동안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밖에 러시아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또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공산주의, 소련, 스킨헤드, 마피아, 카츄샤, 시베리아 유형, 동토의 나라, 철의 장막, 페레스트로이카, 유학생 피살....아, 이런. 내 마음 속의 러시아는 꽤나 부정적인 이미지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하얀 피부의 러시아 미녀들과 창백하고 깊은 눈의 슬라브 남자들, 하얀 눈,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볼쇼이 서커스. 또 이런 것도 있다. 어느 해 겨울,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눈 쌓인 러시아의 제설 광경을 봤는데, 폭설 수준으로 엄청나게 많이 쌓인 눈을 포크레인이 퍼올려 덤프트럭 같은 차에 실으면 그 차가 열로 즉시 눈을 녹여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모습이었다. 과연 눈의 나라 러시아다운 제설차라 수긍하며, 가끔 폭설이 내려 시내 교통이나 대관령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뉴스를 볼 때면 러시아의 제설차를 떠올리곤 했다.

다시 러시아

나는 러시아를 내가 갈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해외 여행에 큰 관심도 없었거니와, 미술 전공자로서 남들은 한 번씩 다녀온다는 루브르 미술관이 있는 프랑스도 가보지 않았는데 러시아를 다녀올 생각 같은 것을 해봤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동료의 여행에 묻어가기로 결정하고 난 후 러시아를 다시 생각하니 놀라웠다. 내 의식 속에서 러시아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도스도옙스키, 고리끼, 톨스토이, 체홉, 푸시킨, 칸딘스키, 말레비치, 샤갈, 레핀, 스타니슬라브스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지 않는가.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모두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대부분은 이름만이지만) 이 많은 예술인들과 러시아란 나라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사고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혹시 레드콤플렉스 같은 게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냉전기에 성장한 나에게 러시아라는 이름은 소련이란 다소 공포스러운 이미지의 이름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나의 중고등학교시절, 반공은 국시여서 도덕시간에는 북한과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정을 배웠다. 지금은 내용조차 생각 안나는 공산주의의 많은 공포 정치에 대해 배웠는데, 학습한 바에 의하면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 중국, 소련은 한 세트였고, 소련의 해체에 이은 중국의 개방 이후로도 오랫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나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인 모스크바의 크렘린 성의 야경

지금 학생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찬양가와 멸공 노래를 배우며 성장했다. 유신헌법이 1972년에 제정되었으니 아마도 그 노래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일부터 십까지의 숫자에 맞춰서 '일하시는 대통령, 이 나라의 지도자' 어쩌고 하다가 '구국의 새 역사를 시월유신 정신으로' 저쩌고 하면서 끝나는 노래였는데, 말하자면 5.16과 시월유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이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도 하고 놀았는데, 오십이 넘은 지금도 나는 그 가사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노래부를 수 있다. 또, 멸공을 외치는 노래도 있었는데, 어린 우리들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목청껏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붉은 뿔난 도깨비를 그리고,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구호를 넣은 포스터를 그려서 상 받던 우화 같은 시절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도덕시간에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가를 배웠다. 중국, 북한, 소련(당시에는 소비에트 연합)의 공산화 과정, 국공합작이니 천리마운동이니 하는 것도 그때 배웠다. 아마도 70-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내 또래 사람들에게 러시아란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구 소련, 공산주의, 붉은 깃발, 철의 장막과 같은 단어를 함께 떠올릴 것이다. 어찌 되었건 한때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소지하거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던 시대가 있었으니,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 지금으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뿐. 이와 같은 교육의 결과, 나에게는 알게 모르게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야간 기차에서 받은 간식 봉투. 키릴 문자는 여전히 어렵다.

또 하나, 러시아 문자의 압박이 있었다. 러시아는 키릴 문자라는 독특한 문자를 사용하는데, 생긴 모양부터가 남달랐다. 일부 문자는 영어의 알파벳과 비슷했는데 어느 것은 발음이 비슷했으나 어느 것은 전혀 다르게 발음되었다. 예를 들어 'H'의 발음은 'ㅇ'이나 'ㅎ'이 아닌 'ㄴ'이 되는 식이다. 안그래도 외국어에는 재주가 없어서 영어 잘하는 친구에 묻어가는 처지 아닌가. 어떻게든 러시아어 알파벳 정도는 익혀서 여행에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목표로 했던 간단한 인사는 커녕 알파벳조차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먹고,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먹기를 반복하다 그만 출발 날짜가 닥치고 말았다. 혹시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으면 호텔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여행은 참 좋았다. 날씨는 좋았으며 도시는 개성이 있었고, 자연은 아름다웠으며, 깊은 눈의 러시아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 또한 맛있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개성 다른 두 명의 자매 같아서 각각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 러시아에도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과 다름없이 사람이 살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야 그 깊은 속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만, 최소한 방문하기 전 내가 가졌던 몇 가지 러시아 울렁증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반년 후인 2017년 1월, 나는 겨울의 붉은 광장을 보기 위해 두 번째로 모스크바를 방문하기까지 했으니....


나의 차갑고 뜨거운 러시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