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 express(JJ버스) , Famous Express(페이머스 버스). 미얀마 여행에서 장거리 이동을 할 때 한 번쯤은 이용하게 되는 버스 회사 이름이다. 국토가 넓은 미얀마에서는 도시 간 이동에 우리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양곤에서 바간, 인레, 만달레이 등의 도시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시간 남짓. 경비가 넉넉하다면야 당연히 비행기를 타겠지만, 편도 10만 원 정도의 티켓값은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으니,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위의 VIP버스들이다. 심야버스를 타면 숙박비도 아낄 수 있으니 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버스 회사에 따라 버스 상태와 서비스가 많이 다르다.)
룸비니 버스에 실리기 위해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내 캐리어.
JJ버스와 Famous버스는 그중 가장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버스로 알려져 있다. 해외 중고차를 수입해서 운행하는 미얀마에서 비교적 연식이 짧거나 새 차를 보유하고 있고 호텔 픽업 서비스까지 제공하니,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미얀마를 여행할 때 아주 유용하다.
하지만, 양곤에서 껄로로 이동할 때 우리는 JJ express , Famous Express도 아닌 '룸비니'란 회사의 버스를 탔다. 너무 늦게 예약을 하는 바람에 원하는 날짜의 표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텔 픽업 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고, 호텔에서 아웅 밍가라 터미널까지 택시비만 짯이나 들여 이동해야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오래된 표가 팍팍 났다.
심야버스는 추웠다. 그냥 시원한 정도가 아니라 무척 '추웠다.' 무척 추운 심야버스에서 승객들은 제공된 두꺼운 담요를 두르고 밤새 오들오들 떨었다. 왜? 아직도 모르겠다. 적당히 시원하면 될 일을 담요까지 두르고 떨 만큼 강풍을 날렸는지. 낮에는 양곤에서 반팔에 살랑거리는 치마바지를 입고 돌아다닌 우리였지만, VIP 버스 안에서 내복에 경량 패딩에 스카프에,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그것도 모자라 밍크담요를 턱밑까지 두르고 떨고 있는 우리를 싣고 룸비니 버스는 껄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버스는 시원한 것이 아니라 정말 추웠다. 하지만, 두꺼운 담요 속에서 하얀 입김을 뿜으며 자던 미얀마인 그 누구도 에어컨을 꺼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네가 있어요!
새벽 5시, 심야버스는 껄로를 가로지르는 대로변에 우리를 내려놓고 떠났다. 껄로는 여행자들이 오래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인레호수까지의 트레킹을 위해 껄로에 온다. Vip버스로 새벽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당일, 혹은 다음날 바로 트레킹을 떠나기 때문에 껄로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다.
함께 내린 승객들은 각자 예약해놓은 어딘가의 호텔로 흩어지고, 도로 위에는 무거운 캐리어를 옆에 두고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후배와 나, 둘만 남았다. 구글맵을 켜고 호텔 가는 길을 확인한 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VIP버스의 추위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껄로의 새벽은 그에 못지않게 추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껄로가 있는 따웅지는 해발 1,430m의 고원에 있었다. 최저기온은 8-10도. 게다가 습기가 많아 밤에는 거의 초겨울 날씨가 되었다.
숙소 가는 길. 너무나도 어두운 길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숙소를 구글 맵으로 확인해보니 나뭇잎 모양으로 난 세 갈래 길 중에서 가운데 길의 가장 끝에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거리가 상당해 보였다. 숙박 맵에서는 중심가로부터 1Km라더니, 아마도 직선거리였나 보다. 사원을 지나 구글 맵이 가리키는 길로 접어들었으나 도저히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비포장 시골길이 나왔다. 급기야 길은 오르막 길로 이어졌고, 그 길 위에는 큰 키의 나무가 시커멓게 앞을 가리고 서있었다. 나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들판 한가운데 호텔이 있나, 불빛도 없는 저 길을 어떻게 가나.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걱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솔직한 마음으로 겁이 많이 났다. 인기척을 듣고 잠이 깬 것인지 갑자기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후배가 먼저 언덕길을 올라갔다. "고개를 넘어가니 동네가 있어요. 어둡지 않아요." 우리는 다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밤, 그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운 밤이었다.
갑자기 길 모퉁이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개들이었다.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들개떼인가 싶어서였다. 인도 여행할 때 밤중에 떼 지어 다니는 들개들의 모습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봤기 때문에 계속 걸어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개들은 우릴 보고 한바탕 짖어대더니 동네 어딘가로 흩어져 사라졌다. 다시 정작이 찾아왔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멀리 붉은색 불이 켜진 네모난 이층 건물이 보였다. "혹시 저거 아니에요?" 후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냐, 구글 맵으로는 더 가야 해." 대답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던 나는 숙박 앱을 켜고 건물 생김새를 비교했다.
"아! 저거 맞나 봐! 맞네, 저거네!"
도착했다. 드디어 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어.
호텔에 도착했지만 이 새벽에 직원을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숙박동으로 짐작되는 건물은 외부 등만 켜져 있었고, 프런트가 있는 작은 건물은 캄캄했다. 해는 도대체가 뜰 기미도 없는데, 캄캄한 이 새벽에 더 이상 이슬을 맞으며 서있을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프런트가 있는 건물 문을 비틀어 열었다. 마침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로비 소파에라도 앉아서 아침을 기다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안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직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호텔 직원들은 프런트 너머의 작은 방에서 자고 먹으면서 호텔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 직원 덕분에 우리는 이른바 얼리 체크인(5달러의 비용을 따로 지불했다.)을 할 수 있었다. 해발 1,430m의 따웅지, 그 안의 작은 도시 껄로의 밤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우리는 더 눅눅하고 차갑고 축축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담요를 한 개 더 요청하여 두 개를 두르고 잠을 청했으나 그 축축한 느낌은 아침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추웠다. 한국에 두고 온 따끈따끈한 온돌방이 너무나 그리웠다.
껄로에서 발길을 멈춤
호텔의 정자 옆에 활짝 피어있던 천사의 나팔꽃
늦은 아침. 우리는 양곤에서 가져온 손톱만 한 귤, 포도, 고구마 과자, 신라면, 커피로 호텔의 정자에 아침상을 차렸다. 껄로의 태양은 따뜻했다. 트레킹을 위해 잠시 머무는 도시, 껄로의 호텔에서 낮까지 남아 빈둥거리는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던 지라 정자의 햇빛도, 정자 옆 천사의 나팔꽃도, 언덕의 노란 꽃들도 모두 우리 차지였다. 언덕에는 호텔 직원들이 새하얀 수건을 빨아 널어 새하얗게 말리고 있었다.
지난밤, 어둠과 추위에 떨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호텔의 아기자기한 정원에, 너무나도 맑은 껄로의 햇살에 반하고 말았다. 황금 사원도, 거대한 불상도 없었지만, 작은 도시 껄로에서 우리는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