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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행5_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양곤 달라마을 여행기

by 김경희
한적한 시골마을 분위기??

양곤 방문 둘째 날의 일이다. 양곤 강 주변을 돌아다니던 후배와 나는 우연히 작은 시장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후배도 나도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지라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시장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장 안쪽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곳이 있었다. 바로 양곤강 건너에 있는 달라 마을로 가는 판소단 선착장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달라 마을은 양곤강 건너편에 있는 섬의 이름이다. 나와 동행한 후배는 양곤에 도착한 첫날부터 이 달라 마을을 유난히 가보고 싶어 했다. 특히 '양곤과 사뭇 다른 한적한 시골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반나절 여행으로 좋다.'라는 가이드북의 설명 글 때문에 그녀는 달라 마을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벽에는 이 마을 방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었고, 후배는 달라 마을 방문을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 달라 마을을 방문하고픈 마음이 남아 있었을 터, 그곳으로 가는 선착장이 눈 앞에 떡 하니 나타났으니 어찌 티켓을 끊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날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의 경고문대로 달라 마을 가는 페리 티켓을 끊지 말았어야 했다.


'Take photo!'

왕복 4000짯 페리 티켓을 끊고 십여 분 만에 강 건너편 달라 마을 선착장에 도착하니, 사이카(영업용 자전거)들과 툭툭이(오토바이 자동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달라 마을을 자전거로 돌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섬이 컸다. 툭툭이들은 두 시간에 걸쳐 섬의 다섯 개 마을을 사만 짯에 관광할 수 있다고 저마다 흥정에 나섰고, 우리는 한 툭툭이 기사와 한 시간, 두 개 마을만 돌아보는 조건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툭툭이 기사가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요구한다고 판단하고 흥정을 멈춘 후 그대로 마을길을 향해 가는데, 툭툭이 기사는 포기하지 않고 우리 뒤를 졸졸 따라왔다. 우리가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체크무늬 론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다부진 몸매의 한 사내가 나타났다. 자신을 이 툭툭이의 보스라고 소개한 그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가격으로 흥정을 마무리 지었다.


툭툭이는 우리를 태우고 이십 여분을 달려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을 뱀부(대나무) 마을이라고 소개한 툭툭이 기사 겸 가이드는 우리를 툭툭이에서 내리게 하더니 높은 굴뚝의 시멘트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설명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그 건물은 쓰나미 때 죽은 사람들을 화장한 화장장이고, 앞의 무덤은 그들의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화장장을 관광명소로 소개하는 패기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가이드는 우리가 자신의 말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무려 세 번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다음에는 마을을 가리키더니 'Take photo, take photo.'를 외쳤다. 일테면 마을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라는 것이었다. 이미 마을 안에는 유럽인들이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우리는 도저히 마을 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마을은 짐작컨데, 양곤의 가장 최빈곤층의 거주지였을 것이다. 간신히 지붕만 이어놓은 벽도 없는 한 칸짜리 집에, 가재도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이부자리며 옷가지 따위가 보따리 보따리 쌓여 있었다. 집주인은 관광객들은 아랑곳 않고 자고 있었고, 반쯤 벗은 아이들은 마을 안을 어지럽게 달려 다니고 있었다. 이 광경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어떤 사진을 찍으란 것인지, 그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뱀부 마을을 떠난 툭툭이는 다시 좁은 마을 길을 내달렸다. 첫 번째 마을의 관광지가 화장터였으니 두 번째는 어떤 마을로 우리를 안내하려는지, 마음이 불안 불안하였다.


두 번째 마을에 도착한 가이드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 앞에는 큰 키의 늙수그레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건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 우리가 미리 놓인 의자에 앉자, 두어 살쯤 되는 어린아이부터 열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앳된 청년까지, 열댓 명의 아이들이 갑자기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키 큰 남자는 아이들을 이리저리 그룹 짓더니, '이 둘은 형제인데 부모가 없고, 이 셋은 남맨데 부모가 없다. 이 아이는 형제, 자매도 없이 혼자'라며 묻지도 않은 설명을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여기는 고아원인데, 자신은 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듯 갑자기 노래와 율동을 섞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치 뮤지컬이라도 하듯 훈련된 몸짓이었다. 가이드는 아이들의 노래에 맞춰 박수까지 치면서 흥을 돋우는데, 우리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박수는커녕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리는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마도 그들의 의도는 아이들을 내세워 관광객들의 기부를 유도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빈곤을 상품화한 관광 코스에, 아이들을 이용한 기부 유도라니.... 미얀마 정부는 과연 그곳의 실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연 그곳이 진짜 고아원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애초 계약한 시간은 좀 더 남아있었지만 우리는 선착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밑장 빼기

선착장에 도착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처음 출발할 때 자신을 보스라고 소개했던 사내가 나타났다. 후배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꺼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수중에 오천 짯 짜리 세 장밖에 없었던 후배가 돈을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내가 나머지 오천짯을 꺼내려고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우리와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돈을 쥔 손을 툭툭이 지붕 위로 올렸다. 그리고, 내가 남은 오천 짯을 꺼내 건네려 하자 갑자기 자신이 받은 돈은 만 짯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아, 그제사 깨달았다. 이들은 사기꾼들이구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경고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가 돈을 든 손을 툭툭이 지붕 위로 올린 순간 주변의 다른 사내가 오천 짯 하나를 빼냈던 것이다. 우리가 서툰 영어로 이미 세 장을 줬으니 한 장만 주겠다고 항의했으나 자신은 두 장 만을 받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세 장을 주는 것을 보았던 지라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 상황에서 얼른 빠져나가고 싶었던 내가 만 짯을 꺼내자 이번에는 툭툭이 한 대에 이만 짯이 아니라 한 사람당 이만 짯이라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사깃꾼에게 걸린 것이었다.


그들이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실랑이해봐야 외국인인 우리들로서 별 이득이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나는 그가 밑장 빼기 했던 오천짯을 더한 만 짯을 건네고 얼른 툭툭이에서 내렸다. 후배와 함께 선착장을 향해 도망치듯 걸어가는데,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얀마에서의 둘째 날, 그야말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심신이 지쳐버린 후배와 나는 돌아오는 페리 갑판에 앉아 멀어져 가는 달라 마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배는 이런 위험한 섬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안내한 무책임한 가이드북에, 나는 미얀마인들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인간들이 미얀마인들이 착하고 순수하다고 한 거야? 나는 그들을 정말 찾아내고 싶었다!

돌아오는 페리에서 그들의 만행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분노의 사진. 건너편이 달라마을 선착장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도 어디에나 있다.

더 이상 양곤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원래 양곤에서 3박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달라 마을에서 정이 떨어진 우리는 일정을 앞당겨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우리는 컬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양곤 시내에서 택시로 한 시간 가까이 떨어진 아웅 밍갈라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인지라 미리 저녁을 먹기 위해 가까운 로컬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남아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는 미얀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를 충분히 하지 못해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다. 우리는 각자 샨 누들과 미얀마식 커리를 시켰다. 나는 커리와 함께 나오는 야채를 반찬 삼아 식사를 시작했다. 삼 일 만에 처음으로 배부르게 먹는 것 같았다.

미얀마 커리의 메인 메뉴를 시키면 양념과 야채가 함께 나온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아마도 맛이 어떠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야채를 가리키며 맛있다는 시늉을 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서더니 이내 야채를 한 주먹 들고 와서 아무 말 없이 야채 쟁반에 툭 얹어놓고 가는 것이었다. 너무나 작은 배려였지만 달라 마을에서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친절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미얀마도 사람 사는 곳인데, 어떻게 좋은 사람만 있겠어?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또, 나쁜 사람만 있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 어딜 가도 착한 사람은 있어.'

바간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여행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 달라마을은 관광객 '삥'뜯는 곳으로 소문난 것이라고, 외국 여행객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 중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한다. 기부금 강요와 소매치기, 바가지 요금, 협박을 당한 여행객들이 꽤 있기 때문에 여행 안내서만 믿고 갈 곳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것이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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