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시청 근처를 걸어 다니다 보면 그 일대 건축물들이 미얀마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구의 90%가 불교도인 나라임을 보여주는 슐레 파고다, 그 주변의 콘크리트 빌딩, 영국 식민지 시기에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들. 그런가 하면 양곤시 외곽으로 가면 미얀마의 전통 가옥이라 할 대나무 집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대는 흘러 미얀마는 오랜 독재 끝에 민주화를 이루고, 나라를 개방했지만, 시대의 모습은 이런 건축물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 때 미얀마를 지배했던 영국은 슐레 파고다를 양곤의 중심으로 삼아 도시계획을 세우고, 도로와 건축물을 지었다. 1927년에 지어진 양곤 시청 역시 당시 지어진 건축물 중 하나다. 이런 건축물들은 양곤 시청 주변에 밀집해 있다. 에야와디 은행, 임마누엘 침례 교회, 고등법원 등, 가이드 북은 이들 유럽식 건축물들을 엮어 식민지 건축 산책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아마도 식민지 시대 양곤의 풍경을 가장 잘 상상해볼 수 있는 장소는 슐레 파고다와 시청에서 양곤강으로 향하는 판소단 스트리트와 스트랜드 로드 부근일지도 모르겠다.
슐레 파고다, 나무에 매달아놓은 미얀마 민간신앙인 낫 사당, 마하 반둘라 공원
그런데, 양곤강 쪽으로 한 블록을 더 내려가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유럽식 건축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외벽의 칠은 벗겨지고, 페인트 칠 대신 곰팡이가 벽 가득 피어 있다. 나무로 된 덧창은 뜯겨나가고, 깨어진 창문에는 비닐이 쳐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듯 건물은 너무나 황폐해져 있었다. 미얀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관광업에 전력을 쏟고 외국인 관광세를 따로 받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아마도 이런 건축물 관리까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곰팡이를 벗겨내고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덧창을 수리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건물이 될지, 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거리 전체를 정리한다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 거리가 될지, 혼자 상상해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미얀마의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이 건축물들도 더 이상 방치된 채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재개발로 사라지거나 리모델링을 거쳐 관광객들의 숙소나 상가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내가 보고 온 미얀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
건물 외벽을 곰팡이가 차지하도록 방치된 건물들. 언젠가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