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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11. 2020

공동주택 만들기 4 :  공동전시

*'공동주택 만들기'수업은 2004년, 인천신나는미술교과연구회 소속 8개 중, 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참여한 공동 수업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공동 수업 지도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의 수업은 교사의 개성, 개별 학교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글은 제가 진행한 수업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동전시

 공동주택 만들기 수업은 처음부터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공동전시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2004년, 인천민족미술인협회의 황해미술제 주제는 '공터 전'이었다. 공동주택이란 공동체를 주제로 한 수업이었고, 전시는 수업을 기획할 때부터 이미 계획되었던 수업의 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수업이 학교 안에서 시작하여 학교 안에서 끝나는 (정확히는 미술 수업 안에서 완결되는) 수업이었다면 이 수업은 그 결과를 지역사회 안의 문화로 환원하는 수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각 학교의 수업이 모여 작은 공동주택 단지가 되고, 각 학교의 공동주택 단지가 전시장이란 문화공간에서 만나 다시 거대한 공동주택 단지를 만든다. 학생 개개인의 작품이 단순한 수행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학생 문화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여 자신의 수업 결과물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일깨울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미술 수업일 것이다. 

황해미술제 '공터 전' 팸플릿 중 '공동주택 만들기' 소개 부분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 불볕이 쏟아지는 8월 중순, 교과모임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 학교에서 완성된 공동주택들을 전시하기 위해서였다. 


황해미술제의 '공터 전'의 전시장은 인천 종합 문화예술회관과 그 앞에 있는 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빔'이었다. 선생님들은 완성한 공동주택을 일정한 크기로 미리 조립했다. 전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쉽게 설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이 모듈을 트럭으로 전시장까지 옮긴 후 조립을 시작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전시장은 공동주택 단지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과 개막식 날 길놀이
전시장 풍경(2002)


수업의 큰 틀은 동일했지만 각 학교에서 진행된 내용은 조금씩 달랐고, 학교마다 다른 수업의 내용을 찾아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고무찰흙 등을 이용하여 귀엽고 예쁘장한 공예를 연상시키는 만들기를 했지만, 2-3학년 정도의 학생들은 사회와 나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을 보여주는 주제를 다루었다. 한 주에 한 시간의 수업을 하는 고등학생들은 짧은 시간을 고려하여 포토몽타주 같은 표현매체를 사용하였다. 


전시장을 찾은 학생들은 공동주택의 마천루에서 자신들의 주택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고, 찾으면 카메라 폰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워했다. 


  개학 후 받은 학생들의 전시 소감문에는 당시의 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내 작품을 찾았는데, 옆 학교 친구에게 이게 내 거라고 얘기하기에 너무 잘못 만들어서 창피했다. 그래서 혼자 살짝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내 작품도 전시되어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고 김선일 씨를 추모하는 작품은 무섭게 느껴졌다.’ 
‘엄마, 외삼촌까지 함께 내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것을 보러 갔다. 그런데 작품이 너무 많아 찾기가 힘들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내 작품을 찾았을 때 정말 기뻤다.’ 


무더운 여름, 더위를 쫓기에는 전시장이었던 스페이스 빔의 냉방장치는 너무 약했다. 아이들은 좁고 무더운 전시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관람을 해야 했다. 교과모임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으면 종합문화예술회관 대전시장 정도에서 전시를 했야 했는데, 전시가 명실공히 학생 중심의 축제의 장이 되려면 길놀이 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기획을 준비하고 학생 주도의 문화행사를 풍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게 된다면 학교 문화예술 수업이 명실공히 지역 문화예술의 한 축으로 확산되는 이상적인 형태가 될 텐데....  그래야 이 전시의 주인공이 수업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될 텐데. 아쉬움이 많았다. 


열흘간의 전시가 끝났다. 국가의 기획에 따라 순식간에 세워진 신도시처럼 전시 공간에 신기루처럼 세워진 공동주택은 또 신기루처럼 각 학교로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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