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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31. 2020

물감의 삼원색과 꽃 염색

프리지어가 시들어 가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개학이 한 달째 연기되고 있다. 집에서 이것저것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연수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견디고 있지만, 매일 출근해서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에서 학생들과 만나 소통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여실히 깨닫고 있다. 무너진 일상 때문에 너무나도 우울했던 어느 날, 집 근처 꽃집에서 꽃 두 다발을 샀다. 내가 좋아하는 프리지어 한 단과 카네이션을 닮은 흰색 꽃 한 단. 꽃을 산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한데, 아이고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집에는 꽃병 하나가 없네. 아쉬운 대로 분리수거장에서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뭉텅이로 꽂아놓고 며칠을 위로받았다.


프리지어가 시들어가고 있다. 생각보다 생명이 짧다. 남은 꽃이나마 보기 위해 시든 꽃송이를 따내고 정리했다. 반면 흰색 꽃은 제법 오래가는 것 같다. 활짝 핀 채 며칠째 그대로다. 흰 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래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수업 하나가 생각났다. 꽃을 물들이는 수업인데, 지금 내 눈앞에 흰색 꽃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혼자 그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수업을 융합수업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수업은 미술수업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긴 하다. 가끔 과학과에서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미적인 것에 대한 배려보다는 물관을 통해 꽃으로 염색약이 전달돼서 어쩌고 하는 과학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수업은 융합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자투리 시간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수업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좀 더 조건이 된다면 색의 혼합 단원 학습할 때 이 수업을 진행하면 수업 몰입도나 이해를 더 높여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수업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물관으로 빨아올린 색소가 어떻게 꽃을 물들이는가 따위의 과학의 원리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색이 인간의 작은 행위로 인해 달라지고, 그 색의 변화가 우리의 지각과 감각에 던지는 기쁨, 생기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수업을 해보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하지 못했다. 꽃을 사는 건 쉽다. 하지만, 여러 날에 걸쳐 여러 반 수업을 해야 하는데, 매일같이 소량의 꽃을, 그것도 내가 필요한 종류의 꽃을 구입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꽃값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국영수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에서 미술과가 쓸 수 있는 예산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적은 예산으로 일 년 수업을 진행해야 하니, 한 시간 수업을 위해 한 송이 몇 백 원씩 하는 꽃을 구입하는 것은 효율적인 예산 운영이라고 보긴 어렵겠지. 우습게도 이런 현실적인 조건이 교사의 수업에 대한 도전가로막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라도 자료를 만들어 두면 언젠가 쓰일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해

준비물:투명 컵(3개), 식용 염료(빨강, 노랑, 파랑), 흰색 꽃(7송이), 알루미늄 포일 또는 랩(이건 없어도 됨.) 커터칼.


1. 투명 컵에 식용 색소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 색의 물을 만든다. 이때 색소의 농도가 진해야 색이 잘 나온다. 색소의 농도가 너무 묽으면 꽃의 색상이 변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내가 했던 실험에서, 빨간색 염료의 농도가 너무 묽어서 결국 빨간색 꽃은 얻지 못했다.) 알루미늄 포일이나 랩으로 컵을 밀봉한다. 이 뚜껑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물의 증발 속도를 다소 늦추고 먼지가 들어가서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참, 염료가 옷에 묻으면 안 지워지니 조심할 것!

2. 꽃 세 송이를 준비한다. 줄기 아래쪽을 사선으로 자른다. 염색액과의 접촉면이 넓을수록 염색액을 잘 빨아들인다. 꽃 세 송이를 빨강, 노랑, 파랑 각각의 컵에 꽂는다.

3. 다시 세 송이를 꺼내 커터칼로 꽃줄기를 반으로 갈라 두 가지 색에 걸쳐 꽂는다. 예를 들어 반쪽 줄기는 빨간색에, 나머지 반쪽 줄기는 파란색 컵에 담근다. 나머지 두 송이도 줄기를 반으로 갈라 두 가지 색에 각각 한쪽씩 담근다.(한 송이의 꽃에 두 가지 색상을 물들일 수 있다.)

4. 이제 한 송이 남았다. 이 꽃의 줄기는 세 갈래로 나눈다.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 색의 컵에 한 줄기씩 각각 담근다.(이 꽃은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 색을 모두 흡수하게 될 것이다.)

초록으로 보이는 염색액은 실은 노랑색이다.

5. 이제 나머지는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면서 꽃 색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찰한다. 염료의 농도가 진하면 한두 시간 만에 꽃 색이 변하기도 한다.(노란색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변했다.) 하지만 농도가 묽으면 꼬박 하루 이상 기다려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자!! 학교에서 할 때는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 올려놓고 매일 변하는 색을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 혹은 일주일 후 미술실에 들어왔을 때 컬러풀한 꽃이 뙇!!! 뭐, 이런 것도 괜찮을 듯. 다만 꽃이 그때까지 시들지 않기만을 바라야겠지.

초록색과 노랑색에 걸쳐 놓은 꽃은 두 가지 색이 모두 발현되었다.

 

* 염색이 끝난 꽃은 꽃병에 꽂아두고 감상하면 된다. 혹은 말린 꽃으로 만들어 장식하거나 책갈피에 넣어 압화로 만든 후 공예 수업에 활용할 수도 있다.

*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을 섞어 자신이 원하는 색을 만들어 세상에 없는 색의 꽃을 염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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