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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16. 2020

공동주택 만들기 3:공동주택 속에 우리들의 삶이 있다.

*'공동주택 만들기'수업은 2004년, 인천신나는미술교과연구회 소속 8개 중, 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참여한 공동 수업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공동 수업 지도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의 수업은 교사의 개성, 개별 학교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글은 제가 진행한 수업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동주택 속에 우리들의 삶이 있다.

아파트, 빌라 등의 공동주택은 대도시에서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편리하고 익숙한 주거 양식이다. 네모난 상자 형태의 가구 여러 채가 모여서 만들어진 주거 형태. 밖에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도시의 마천루를 이루기도 하고 한 밤 반짝이는 불빛이 근사한 야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의 창 문 안에는 수십, 수 만의 삶이 다양한 모습으로 담겨 있다. 작게는 서로 다른 분위기의 가정의 모습이, 좀 더 확장시켜 보면 가정으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사회의 모습이 그 안에 들어있다. 즉, 공동주택 만들기는 단순한 실내 인테리어의 재현이 아닌 시대와 사회의 모습, 삶의 모습을 서사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외형은 공동주택의 형식을 빌되, 그 안에는 단순한 실내의 모습이 아니라 가족의 일상생활은 물론, 자신의 미래의 꿈, 건강한 생활인으로서의 부모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아내기도 하는 수업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학생들이 나와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숨어 있는 각기 다른 꿈과 희망, 삶, 일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랐다. 한 사회란 개개인의 삶의 총합이되 총합을 넘어서는 것 아니런가. 따라서 학생들 하나하나가 만들어낼 주택 상자 하나하나는 모여서 아파트나 빌라 단지를 만들고, 그 단지가 모여 거대한 공동주택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 우리 수업의 목표였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모습을 상상하였다.

인테리어 말고, 집 안의 풍경 말고, '삶의 모습'

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완성한 모습이 공동주택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지라도 하나하나의 상자 안에 들어갈 것은 실내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자 안에 들어갈 것은 2004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다양한 삶의 풍경이다. 수업을 진행할 때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나의 경우 학생들에게 공동주택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실내의 모습을 벗어나는데 무척 어려워했다. 즉, 공동주택이라는 수업 주제를 듣는 순간 학생들은 이미 하나의 상을 머릿속에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상 안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사고를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들,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다양한 이웃의 삶으로 시선을 돌리고 사회 문제에 까지 생각을 확장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늘 생각하는 것인데, 미술수업에서 학습 목표를 미리 제시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수업을 이끄는 교사의 생각 안에 들어있는 그 무언가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며, 교사가 제시하는 학습 목표나 예시 작품은 학생들의 사고를 촉발시키기보다는 제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수업에서 무엇을 제시하고 제시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이 생각이 실내 풍경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학교에서 선택한 방법은 마인드 맵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학생들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니, 학생들의 작품이야 말로 한 시대를 가장 솔직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방을 예로 들자면, 요즘은 코인 노래방이 유행이지만, 2004년 당시에는 일본의 가라오케가 변형된 노래방이 처음 상륙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보통 회식은 일차 식사, 이차 노래방 순이었고, 학생들 역시 노래방을 즐겨 찾았다. 지금이야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그때만 해도 노래방을 드나드는 학생들을 단속하는 것은 학생과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으니,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학생부의 단속에도 학생들은 자신들의 문화로 노래방을 선택했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반짝이는 조명이 돌아가는 노래방 풍경이 여럿 등장한다.(아마도 k-pop의 싹은 여기서부터 텄을지도.) 오른쪽 사진은 TV 프로그램 중 유재석과 이효리가 MC로 활약한 쟁반노래방을 만든 작품이다. (쟁반노래방은 요즘도 가끔 리메이크한다.)

좌, 가운데: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우:젊은 이효리와 유재석이 진행했던 쟁반 노래방


또, 다양한 가정의 모습도 등장한다. 형제자매 간의 아옹다옹하는 모습들,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모습, 방을 어지르고 혼나는 모습 등 여느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모습들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굵직굵직한 사회적인 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4년 5월경, 중동에 선교하러 갔던 청년이 알카에다에 살해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런 사건들은 학생들에게 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무거운 주제가 다루어지기도 했고, 산업화의 이면에 비인간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이란 다소 추상적인 주제나  직장에서 가족을 위해 힘겹게 일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꿈을 그리거나 여러 공간의 인테리어 꾸미기를 한 학생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모든 것의 총합이 2004년을 살아가는 학생들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여 공동주택이라는 형식을 빌어 가상의 도시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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