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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12. 2020

공동주택 만들기 2;수업의 시작, 비극

인천 신나는 미술교과연구회 2004년 공동수업

*'공동주택 만들기'수업은 2004년, 인천신나는미술교과연구회 소속 8개 중, 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참여한 공동 수업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공동 수업 지도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의 수업은 교사의 개성, 개별 학교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글은 제가 진행한 수업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수업의 시작, 비극

'공동주택 만들기' 수업은 교과연구회의 J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J선생님은 이 수업을 이미 시도해본 경험이 있었다. 학기말 자투리 시간에 짧게 진행한 수업이었는데, 하드보드지에 색연필을 사용하여 공동주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이를 연결하여 공동주택의 모습을 연출하는 수업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학생의 작품이 J선생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해당 학생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래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다음은 당시 학생 작품을 찍어 보관하고 있던 J선생님의 자료 사진으로, (오래된 사진이라 화질이 좋지 않음.) 가장 왼쪽 사진은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아파트를 연출한 사진이다. 가운데는 노래방에서 모임을 갖는 흥겨운 풍경, 가장 오른쪽은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2004년 당시는 성적과 관련된 학생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아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였다. 학생들의 작품을 다시 돌아보면 당시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집은 정 반대의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 집에서는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삶의 운명과 관련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지만, 바로 옆집은 흥겨운 모임과 노래에 푹 빠져 이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비록 연출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웃의 삶에 무관심하고, 이웃으로부터 간섭받고 싶지 않은 우리네 공동체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상황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당시 두 학생은 의도적으로 두 화면을 연출했다고 들은 것 같다.)


이 두 학생의 그림이 공동체와 관련한 수업을 좀 더 깊이 있게 진행하고 싶은 생각을 J선생님에게 불어넣었던 것 같다. 당시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은 우리나라 주거 양식에서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도시인 인천에서의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보다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도시 공동체에 대한 연구가 진척을 이루고, 마을 공동체 실천이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시도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 세대 간, 계층 간 간극은 커지고 있었고, 무너져가는 공동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두 학생이 연출한 그림은 당시의 시대적 삶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고, J선생님에게 수업 안에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필요성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J선생님의 수업 제안에 교과모임의 다른 선생님들이 동의함으로써 2004년 인천 신나는 미술교과연구회의 공동수업으로 '공동주택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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