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Feb 04. 2018

꼰대를 위하여

 나도 꼰대?


 '내가 누군 줄 알아, 네 까짓게 뭘 안다고, 어디서 감히, 왕년에 내가 말야, 어떻게 내게, 내가 그걸 왜'  이따위 말을 자주 쓰게 되면 꼰대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데 오십이 넘어서면서 '왕년에'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옛날에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옛날에는, 젊었을 때는, 우리 때는.... '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같이 옛날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배어나는 대사들. 문득, 소름 끼치는 전율, 어, 내가 꼰대가 되었나?


젤리의 추억

 '옛날에는' 하고 운을 띄울 때는 대개 과거의 일이 불쑥 떠올랐을 때다.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던 사건들이 작은 계기로 툭 튀어나올 때 우리는 옛날에는 하고 말을 꺼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에서 발견한 물건 하나가 나를 옛날로 데려갔다.

 일주일에 두 번, 아르바이트하는 딸을 데리러 가는 것은 최근 나의 중요 일정 중 하나인데,  딸아이를 기다리면서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곤 한다. 어느 날, 마트 진열장 한 곳에서 발견한 과자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알록달록 빨갛고 파란 젤리 팩.

어느 시골 장터에서 만났음직한 과자류는 이것 이외에도 여러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과자를 판매하는 대형마트가 있다는 사실이.

 육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나는 유난히 시골 할머니 댁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중 여러 날을 고흥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서 보내곤 했다. 어느 해였을까.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설을 앞둔 어느 날, 어린 나는 장에 가는 할머니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알뜰하셨던 할머니는 녹동장까지 시오리를 걸어 걸어 다니셨는데, 어린 내가 할머니를 졸라 따라나선 것이었다. 할머니는 평소 닭이 알을 낳으면 쌀독에 묻어두곤 하셨는데 명절 장을 보기 위해 모은 달걀을 꺼내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달걀은 녹동장에서 명절에 쓸 생선, 과일 따위와 바꿔질 것이었다.

  오래 걸어 도착한 장마당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할머니 옆에 꼭 붙어선 어린 나는 할머니가 달걀을 파시는지, 사과를 사시는지는 관심이 없었고 시장 가득한 주전부리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가장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젤리였다. 젤리는 당시에는 귀한 과자였다. 나는 그 과자의 이름이 젤리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화려한 색상에 달달해 보이는 빨갛고 파란 과자가 탐났을 뿐.

 지금 생각하면 울 할머니는 상당히 실용적인 분이셨다. 마당가 텃밭에는 식사에 필요한 채소만 가꾸셨을 뿐 그 흔한 참외 넝쿨 하나 기르지 않았다.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녀인 나를 위해 여러가지로 마음을 많이 써주셨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더운 여름에 팥죽을 쒀주시기도 했고, 이웃집에 놀러 가셨다가 그 집에서 먹을 것을 내오면 집으로 가져와 내 손에 쥐어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실용적이었던 할머니는 제삿상도 실용적으로 차리셨고, 주전부리, 예를 들어 약과, 한과, 오꼬시 따위를 올리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것을 사는 일도 드물었다.

  그 날 장터에서 나는 할머니를 졸랐을까?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아마 할머니는 어린 나를 설득하려고 하시지 않았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날 나는 과자를 획득했다. 돌아오는 시오리 길, 그 긴긴 길을 과자를 조금씩 깨물며 걸어 돌아왔다. 아마 무척 추운 길이었을 텐데 그날의 추위는 별로 기억에 없다. 과자의 색깔만 강렬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기억 속의 그날로부터 40여 년이 흘렀다. 세월과 함께 과자는 점점 흔하고 점점 더 세련되어져갔다. 이름, 종류, 포장, 디자인, 맛.... 그런데, 마트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그 젤리는 40여 년 세월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쩌면 그렇게 변하지 않는 디자인과 색채와 포장을 하고 있는지. 맛 또한 40여 년 전 그 시간 그대로 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마트를 돌아보던 딸아이는 젤리 사진을 찍어대는 나에게 살 것이냐고 물어왔다. ‘아니, 사지는 않을 건데 오랜만에 이런 과자를 봐서 사진으로 찍어두는 거야. 사진 색깔 이쁘지 않냐?’ 딸아이는 ‘옛날에....’ 로 시작되는 젤리와 관련된 나의 옛이야기를 짜증내지 않고 잘 들어준다. 다행한 일이다. 내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는 다시 한번 다정한 모습으로 살아나오신다.

꼰대를 위한 변명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시간들이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앞이 아니라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때가 바로 삶에서 중요한 고비를 넘기거나 해오던 일을 갈무리하게 될 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생 몸담아온 일을 그만두고 은퇴를 하거나 혹은 은퇴를 생각하게 되면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요즈음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왕년에는 어쩌고' 할 만한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과거를 되짚어보고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조막만 한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이렇게 늙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는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길만한 이름은 아닐지라도 누구든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들의 역사를 회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꼰대들의 ‘왕년에’는 바로 이런 욕구들의 무의식적인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하나의 역사로 이해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자신의 지난 역사를 정형화하고, 자신들의 시간의 의미를 타인을 통해 증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내가 겪은 첫눈 오는 날의 설렘, 내가 겪은 비 내리는 언덕의 흙냄새, 내가 겪은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누군들 공감하겠는가. 지나간 사건들은 머릿속에서 아름답게 갈무리되어 영웅담으로 바뀌는 일조차 종종 일어나니,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꼰대들은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왕년에'를 빙자한 꼰대들의 꼽꼽한 행동까지 정당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가슴에 담아만 놓기에는 넘쳐흘러 터질 것만 같은 '왕년의 이야기들'은 의도치 않게 시시때때로 바깥세상으로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그저, '저 사람은 한때 자신이 가졌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의 청춘을 그리워하는구나,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구나'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 시간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꼰대들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새로운 청춘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