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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31. 2017

사천 원

사천 원


이사를 하면

언제, 어느 결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세월의 흔적이 오소소 

먼지를 일으키며 떨어진다.

 

지금은 거저 줘도 가져가지 않을

구식 다이어리 속 누런 종이 한 장

한 귀퉁이는 살짝 접혀있고

또 한 귀퉁이는 살짝 찢겨 있는

원고지 한 장


용케도 십 수년을 그곳에서 견디었구나.

용케도 그곳에서 숨어

절망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사 학년 아들이 어느 날 물었다.

‘엄마는 뭐를 제일 좋아해?’

아무 생각 없이 툭,

‘엄마는 돈을 제일 좋아해.’


어버이날, 아들은

원고지로 포장한 선물을 내게 내밀었다. 

세뱃돈도 엄마에게 모두 뺏기고

오백 원, 삼백 원, 이백 원

모은 돈 천 원짜리 네 장을 내게 내밀었다. 

‘엄마는 돈을 제일 좋아하잖아.’


돈이 제일 좋았던 엄마는 어느덧 은퇴를 고민하고

고사리 손으로 사천 원을 내밀던 아들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어른의 길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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