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
언제, 어느 결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세월의 흔적이 오소소
먼지를 일으키며 떨어진다.
지금은 거저 줘도 가져가지 않을
구식 다이어리 속 누런 종이 한 장
한 귀퉁이는 살짝 접혀있고
또 한 귀퉁이는 살짝 찢겨 있는
원고지 한 장
용케도 십 수년을 그곳에서 견디었구나.
용케도 그곳에서 숨어
절망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사 학년 아들이 어느 날 물었다.
‘엄마는 뭐를 제일 좋아해?’
아무 생각 없이 툭,
‘엄마는 돈을 제일 좋아해.’
어버이날, 아들은
원고지로 포장한 선물을 내게 내밀었다.
세뱃돈도 엄마에게 모두 뺏기고
오백 원, 삼백 원, 이백 원
모은 돈 천 원짜리 네 장을 내게 내밀었다.
‘엄마는 돈을 제일 좋아하잖아.’
돈이 제일 좋았던 엄마는 어느덧 은퇴를 고민하고
고사리 손으로 사천 원을 내밀던 아들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어른의 길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