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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Feb 04. 2018

울 엄마

울 엄마,주여사

 올해 83세의 울 엄마는 대단한 멋쟁이에 자존심이 높으신 분이시다. 자존심이 센 울 엄마는 자신이 노인 취급받는 것도 매우 싫어하셨다. 당신도 노인이시면서 아파트 노인정이나 노인대학을 권할라치면 내가 노인이냐며 극구 거부하셨다. 지금 다니는 노인대학도 80이 다 되어서야 뒤늦게 다니기 시작하셨다. 울 엄마의 애칭은 주여사님이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 정말 귀여울 때는 우리 주여사님이라고도 부른다.


 울 엄마 주여사님은 참 흥이 많다. 노인대학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래교실이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노래교실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신다. 울 엄마는 뽕짝 애호가이시다. 직장 생활하느라 바쁜 자식들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시간을 뽕짝을 들으면서 메꾸신다.

 한 번은 엄마가 간절히 원하셔서 언니가 뽕짝 노래가 가득 들어있는 컴퓨터 칩이 내장된 미니 오디오를 사드린 적이 있었다. 우리랑 이야기를 하다가 피곤해지면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오디오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오디오에 달려온 가사집은 이내 너덜너덜해졌다.


노래방 가자

 울 엄마의 딸 답지 않게 나는 흥이 많지 않다. 흥이 많지 않아서 당연히 노래방도 자주 가지 않는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 때 외에는 나 스스로 돈을 내고 노래방에 가는 일이 드물다. 엄마의 딸 답지 않게 우리 형제들 또한 노래방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노래방에 갈 일 또한 없었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우리 노래방 가자. 엄마가 가고 싶어 하셔.'

 나이 오십에 처음으로 엄마와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노래를 잘 못하는 나는 탬버린을 흔들고, 엄마는 눈 밝은 딸들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 제목을 불러주며 번호를 넣어달라고 하셨다. 그날 밤, 울 엄마는 우리가 계산한 한 시간에 사장님이 주신 서비스 20분, 또 서비스 20분까지 무려 한 시간 40분을 거의 혼자서 노래를 부르셨다. 엄마는 무척 즐거워하셨다. 진즉 함께 가지 못했던 것이 죄송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어린 시절, 동네에 들어온 악극단을 따라 고 싶었노라고 고백하셨다. 그때 따라갔으면 내로라하는 가수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수줍게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고백하건대, 내 귀에 울 엄마 노래는 내로라하는 가수가 될 만큼 잘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트로트를 잘 모르니 아마 잘 못 들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언니도 트로트를 잘 모르니 아마 언니도 잘 못 들었을 것이다.  

 

SNS에 입문하다

 이 년 전의 일이다. 엄마가 뒤늦게 핸드폰 문자를 깨쳤다. 부산 사는 막내 이모에게 놀러 갔다가 배운 것이다. 전에도 언니가 가끔 가르쳤지만 엄마가 따라 하지 못하자 바쁜 언니는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그런데, 막내이모의 교수법이 언니보다 뛰어났던지 엄마는 문자 보내는 법을 마스터하신 것이었다. 깜짝 놀란 우리 자매는 당장 엄마를 자매들의 카톡방에 초대했다.  

 엄마에게 간단한 문장 하나의 답장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내 문자로 하는 대화에 익숙해지셨다. 지금은 긴 문장도 적어 보내신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문자도 함께 보내신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인가는 오른쪽 사진과 같은 문자를 보내셨다. 정말 궁금했다. '테일즈런너'는 무슨 뜻일까. 메이즈 러너도 아니고.  '그 이름 트러블을'은  또 무슨 뜻일까. 정말 정말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아마 엄마도 왜 그런 글자를 보내셨는지 모르실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테일즈런너'는 게임 이름이었다. 엄마는 어쩌다 게임 이름을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긴 걸까. 아마도 '트러블을'도 타자를 치다 어디선가 실수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으리라. 그런데, 어디서?어떻게?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 엄마는 가끔 방을 잘못 찾기도 하신다. 동생에게 보낼 문자를 나에게 보내시고는 동생에게 답장이 안온다며 혹시 동생이 엄마에게 삐쳤는지 묻곤 하셨다.

 이제 엄마는 '응' 대신 숫자'0'을 보내실 정도로 카톡에 익숙해지셨다.

 

 문자의 세계를 정복하신 엄마는 이내 이모티콘의 세계도 넘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경희야, 하하하하 하고 웃는 이모티콘 재밌더라" 하시면 그건 사달라는 뜻이었다. 형편이 넉넉한 아래 동생이 엄마 이모티콘의 스폰서가 되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 중 누구보다 이모티콘 부자가 되셨다. 엄마가 대화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감정의 이모티콘을 보내면 우리는 현웃 터져 어쩔 줄 몰랐다.


약혼 사진 속의 울 엄마(왼쪽)와 여고 졸업반인 나(오른쪽)


십 년만 더 젊었으면

 엄마는 이제 뽕짝 노래 수 백곡이 들어있는 오디오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노래를 배우신다. 새 노래가 필요하면 우리에게 전화를 하신다. 주로 나와 언니가 그 대상이다. 우리가 노래를 찾아 카톡방에 링크를 보내면 엄마는 그 링크를 클릭해서 노래를 들으신다. 가끔 서툰 타자로 직접 찾아보기도 하신다. 핸드폰은 엄마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엄마가 고백을 하셨다.

 "경희야, 너무 재미있어야. 십 년만 더 젊었으면 좋겄다."

 80 넘어 뒤늦게 알게 된 디지털 세계가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있으니 십년만 젊었으면 두루 알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똑순이 울 엄마

 엄마가 노인대학이나 노인정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를  나나 울 형제들은 실은 알고 있다. 울 엄마는 배움이 짧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셨던 외할아버지는 아들들은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으나 딸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둘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배우고 싶어서 담너머로 신발을 던져놓고 맨발로 나가 학교로 달렸다고 한다. 그나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글만 간신히 깨치고 배움을 그만둬야 했다.

 만일 울 엄마가 제대로 배웠다면 아마도 내로라하는 가수는 못되었어도 내로라하는 신여성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 동네에서 엄마는 경우 바르고 똑소리 나는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누구보다 잘 키우고 동네에서도 인정받는 아줌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못 배운 것에 대한 열등감은 아마도 평생 엄마를 주눅 들고 소심하게 했을 것이다. 더구나 멋쟁이에 말도 잘하는 할머니였으니 그런 약점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울 엄마는 점점 애기가 되어가고 계신다. 목소리 크고 기운찬 울 엄마는 어디 가셨을까. 나도 울엄마가 오래오래 사셔서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고루 즐기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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