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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27. 2017

엄마도...

 딸아이가 새벽부터 아르바이트 간다고 부산하다.  신학기 학비를 미리 준비해보겠다며 시작한 아르바이트다. 이제 여섯 시 조금 넘은 시간, 동지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라 창 밖이 깜깜하다. 여느 날은 혼자 잘 나가더니 웬일로 오늘은 버스정류장까지 바래 달라고 청한다.

 '대도시에, 아파트에, 가로등 환하고, 모퉁이마다 관리실인데 뭐 그리 무섭다고. 인터넷으로 귀신 이야기나  읽지 말던지. 딴 날은 잘만 다니더니 오늘은 유난이네'

 안으로 투덜거리며 오리털 파카를 걸치고 따라나섰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몰골이 차마 눈뜨고 못 봐주겠구나. 자다 깨서 세수도 안 하고 따라나선지라 머리는 까치집이요, 수면바지에 어그부츠,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 내 모습을 보고 딸아이가 키득거렸다. 나도 함께 어이없어하며 피식 웃었다.

 버스 정류장은 아파트 입구 너머 백여 미터 앞에 있다. 버스정류장이 보이자 딸아이는 '이제 됐어' 하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내달린다. 

 고작 이만큼 같이 걸을 거면서 나오라고 했나. 옹송그리며 오던 길 그대로 되짚어 돌아오던 나는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그만 입이 찢어져라 참았던 하품을 토해내고야 만다. 깜짝 놀라 경비실을 돌아보니 다행히도 경비아저씨는 책상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문득 딸아이 고3 때가 생각났다.  아이는 독서실이 문을 닫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어서 어두운 길이 늘 불안했다. 나는 11시 55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매일 마중을 나가곤 했었다.


밤길


공원 따라 난 길 위에

노오란 나트륨 등

노오란 불빛 아래

노오란 단풍잎


나도 여자

밤 12시는 무서운데

딸아이 데리러 독서실 가는

나는 엄마


옷깃에 파고드는 바람이 매서운데

밤길에 만나는 사람은

무섭다


밤 12시

무겁지만 등 따습다며

가방 둘러 맨 딸아이와

집으로 돌아온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밤길

                                      (2011.11.14)


 엄마는 미지의 생명체다. 엄마이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일이 없어지는 이상한 생명체. 엄마는 그 어떤 언어로도 분류하기 힘든 그 어떤 생명체인 것 같다. 어떤 생물학자인들 감히 이 미지의 생명체를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미지의 생명체는 직접 되어보지 않으면 참 이해하기 힘든 생명체이기도 하다. 딸아이가 이른 새벽 나의 호위를 청한 것은 아마도 아직은 내가 자신을 지켜줄 힘이 있는 존재란 뜻일까?


 울 엄마는 올해 83세이시다. 한때 전국 산을 재패하신 산 아가씨였었다. 남다른 패션감각으로 동네 아줌마들을 기죽인 멋쟁이셨다. 하지만 용돈 한 잎 타내려면 호된 지청구를 각오해야 했던 호랑이 엄마이기도 했다. 경우가 바라 온 동네 해결사 역할을 하신 똑순이 아줌마였다. 동네 아줌마들은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중재를 청하곤 했었다.

 지금 내 나이 언저리의 젊은 나이에 엄마는 혼자가 되셨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던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담장 너머로 엄마의 울음이 새 나와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하고 한 참을 서 있곤 했었다. 호랑이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 매일매일 자식들 전화를 기다리는 약한 존재가 되셨다.

 

 나와 형제들은 더 이상 엄마에게 밤길을 함께 걸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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