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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19. 2022

주의5_주의에 주의하다 2

일단 하나의 과제에 온전히 주의를 쏟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결과에 대한 어떤 지향이 생겨난다. 이 마음속 지향은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명시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미지의 상태다. 우리의 의식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이 이미지를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념은 점차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간다. (주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수업시간에 과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어? 너는 이것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와 같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이것을 여기에 연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돼요.’라던가 ‘이 색을 칠하면 좀 더 무서운 분위기가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예요.’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이런 대답은 학생들이 교사의 과제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어떤 지향이 생겨났고, 거기에 가깝게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다면 학생들은 매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마음속 지향을 해결하지 못하면 학생들의 의식은 혼돈에 휩싸여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주변의 물건이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구하기도 하고 도구를 실험한다. 알고 있는 지식을 연결하고 재해석하는데 골몰한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과제에서 길을 잃는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과제를 다른 방향에서 이모저모로 따져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편, 학생들의 과제 해결 과정을 주시하고 있는 교사의 마음속에서도 어떤 지향이 생겨난다. 교사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여러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생겨난 안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 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 학생들의 미완성 과제를 보면서 교사들은 ‘이 부분 명암을 강조하면 입체감이 살아나겠구나. 이곳과 저 아이디어를 결합하면 더 좋을 텐데. 여기에 선 하나만 그어도....’ 등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방향을 잃은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교사의 조언을 구한다. 이때의 교사의 조언은 학생들은 주의의 방향을 바꾸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외부의 지시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의가 생겨나기도 한다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교사의 조언은 자원이 부족한 학생이 추구하고 있던 해결책보다 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지향을 버리고 교사의 마음속 지향을 따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교사가 제시한 해결책은 매우 매력적일 것이고 학생이 상상해왔던 결과를 보다 쉽게 드러낼 수도 있기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조언은 단지 학생의 활동 결과물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성장에 이를 수 있는 조언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미완성 작품을 볼 때 완성된 모습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학생이 어떤 형태로 완성하기를 원하는가를 상상해야 한다. 이는 언어로 하는 조언만이 아니라 실기수업 시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로이스 헤틀랜드 등은 그들의 책 <실기수업 방법론>에서 실기수업에서 학생에게 조언을 하는 한 교사의 모습을 보고하고 있다. 그 교사는 학생들에게 실기의 시범을 보일 때 학생 작품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여분의 종이에 시범을 보인다. 학생들은 해결 방법(위 책에서는 미술 기법)을 눈으로 확인할 뿐이다. 이렇게 눈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 효과가 나타나며, 실제로 그것을 연습하지 않아도 이를 수행하는데 향상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학습이라고 한다. 관찰학습은 미술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학습 방법이다. 미술교사의 실기 시범(시연)은 학생들에게 관찰학습의 효과가 있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시범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라고 판단되면 교사의 시범과 유사한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수정할 것이다. 이런 방식의 조언과 교사가 직접 학생 작품에 손대는 것과의 차이는 학생이 교사의 시범을 스스로 재현하더라도 교사의 지향이 아니라 학생 내면의 지향에 따라 자신이 이해한 수준에서 적절하게 그 기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교사의 조언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의미 있는 성장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교사는 조언의 방법과 수위를 늘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 과정은 늘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구 사용법을 발견하고 사고와 표현의 확장이 일어난다. 하나의 대상에 주의하고 거기에 골몰하는 동안 대상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게 되고 그 결과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실패에서도 배운다는 오래된 격언은 거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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