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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19. 2022

주의4_주의에 주의하다 1

3. 주의에 주의하다 *8

주의(주목)란 단어를 들으면 교실이 소란해질 때마다 지휘봉(가끔 매가 되기도 했다.)으로 칠판을 탁탁 치면서 “주목!”이라고 외치시던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자세를 가다듬고 칠판에 눈동자를 고정시킨 채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어야 했다.(요즘에는 주의 집중이란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주의라면, 주의란 학생들에게 다소 강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어떤 것인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주의는 칠판을 똑바로 쳐다보는 학생들의 눈길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무수한 감각의 공격을 받는다. 눈으로, 귀로, 코로, 피부로. 우리는 그 모든 감각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내가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느낀 그 모든 감각들이 나에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어디 감각뿐이랴.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건조차도 자신에게 의미가 없는 것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할 때 만나는 사람들의 모든 얼굴 생김새, 출근길에 읽었던 뉴스, 심지어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심지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주의를 주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한다. *9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의 인생이란 그가 주목한 것들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현대 인지심리학은 ‘주의(attention)는 우리의 의식/마음을 사로잡으려는 특정 자극을 선별하고, 선택된 자극에다 우리의 인지 자원(또는 정신적 노력)을 집중하는 일’*10 이라고 설명한다. 또 프랜시스 크랙은 ‘주의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건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주의를 기울인 사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속하고 정확한 반응이 이루어지며 주의는 그 사건을 쉽게 기억하게 만든다.’*11고 하였다.


주의가 없다면 우리는 외부에서 입력되는 감각 정보와 내수 세계에서 생성되는 기억과 상상에 의해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주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어, 결국에는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12

주목은 경보체계, 조직력, 내적․외적으로 발생하는 일을 자신에게 적합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조율하고 통합하는 네트워크의 총체로 반응의 방향을 결정한다. *13  


주의는 언제 생겨나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주의가 생명체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주변으로부터 매우 강렬하거나 크거나 갑작스러운 감각 인상을 받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인상을 주목한다. 길에서 갑자기 자전거 같은 움직이는 물체가 튀어나오거나 물건이 깨지는 큰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극적인 상황은 우리 유전자에 숨어있는 위기 대처 능력을 일깨운다. 이럴 때 생겨나는 주의를 기초 주의라고 부른다. 기초 주의는 극적인 상황뿐 아니라 주변의 색과 달리 튀는 색깔을 가진 과일, 독특한 모양의 나무, 특이한 생김새를 가진 동물 등의 사소한 것에서도 생겨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적응과 번식을 위해 유전자 안에 새겨져 있는 적응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 주의는 수동적이고 무의식적 끌림을 동반하는 것 같다. 


현대사회에는 원시시대와 같은 방식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나 대상, 새로운 자극을 만나면, 비록 그것이 생명과는 관계가 없는 것일지라도 우리의 유전자는 일단 그 자극에 집중한다. 만일 수업에서 교사가 흔히 경험하지 못했던 주제나 소재, 재료를 제시하거나 평소와 다른 교실 환경을 만들면 학생들은 일단 그것에 주의하게 된다. 


기초 주의는 오래 지속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난 상황이 단순히 주의를 끄는 이상으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면 주의는 지속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상황을 좀 더 경험해보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주의는 기초 주의보다 좀 더 능동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선택은 아마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인 상황과 관련하여 더 깊은 경험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이를 선택주의라고 부른다. 


선택주의는 기초 주의와 달리 우리의 선택에 의해 일어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학습자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본능적 주의(기초 주의)를 끄는 것에서 학습이 시작되었을지라도 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교사와 학생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선택주의는 우리의 선택에서 시작된 주의이기 때문에 목표와 관련 없는 것들을 배제하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해야 할 작업의 순서를 정하고 새롭게 들어온 정보를 재조직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의식은 질서를 찾고, 이 질서는 우리를 ‘최적 경험’에 가깝게 데려간다. 


‘최적 경험’은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협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를 말한다. 최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정신적 에너지를 온전히 선택한 자극에 쏟으면서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느낀다. ‘외적 조건들에 압도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내 운명은 내가 주인인 듯한 느낌’을 느끼며, 심지어 어려움이 예견될지라도 스스로 그 문제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우리의 온몸과 정신은 매우 충만한 감각을 느끼게 되고 시간은 실제보다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반대로 영원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이 순간의 경험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매우 특별한 감정으로 추억하게 된다.(다만, 최적 경험 상황이 늘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미술 수업에서 학생들은 최적 경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이와 비슷한 상태에 이른다. 가끔 학생들은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벌써 끝났어요?‘ 라든지 ’ 미술시간은 너무 짧아요.‘라고 말한다. 이때 학생들은 최적 경험 상태에 근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교사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활동에 필요한 도구와 표현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며, 때로 교사가 학습 목표로 제시한 것 이상의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주의하는 대상은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일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어린이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에 많은 관심을 쏟지만 정작 성인이 되면 자신이 관심 있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보니 마치 우리의 주의는 외부 자극에 의해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생각과 정서가 주의의 대상과 공명했을 때 더 강한 주의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주의하는 대상은 우리가 보게 될 것을 결정하고, 이것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는 다시 우리의 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해서, 주의가 우리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70년대의 연구가 있다.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각각 도둑의 역할과 집을 보러 온 사람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실험이 끝난 후 두 그룹이 각각 집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설문으로 조사했는데,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바와 같다. 도둑의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집안 어느 곳에 값비싼 물건이 있는가를 기억해냈다. 하지만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집의 구조나 방의 상태와 같은 전체적인 모습을 더 많이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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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심리학에서는 주의 현상을 여과처리장치, 스포트라이트, 줌렌즈와 같은 은유를 사용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의는 스포트라이트에 가깝다. 이 이론은 ‘주의의 증진 측면을 부각했고, 오로지 한 번에 하나의 지점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개념화되기 때문에 동시에 두 지점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다.’(Posner,1980,1984) <기억과 주의와의 비교를 통한 의식의 개념과 기능적 특성, 김은숙, 김현정, 인지과학, 제21권 제4호, 2010, 제4호 p.564-565 재인용. 이 글에서는 주의의 개념 중심으로 서술하고, 주의가 일어나는 절차적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9 대표적인 실험으로, 농구 시합에서 고릴라 옷을 입고 지나가는 실험을 들 수 있다. 농구의 패스와 골에 집중하라는 과제를 받은 실험자는 농구 경기장을 지나가는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우산을 쓴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의는 우리가 집중한 것 이외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정서는 일부 기억한다는 보고도 있다.

*10  Ronald T. Tellogg, 인지심리학, 시그마프레스 제3판, 2016, p.77 

*11  프랜시스 크랙, 놀라운 가설, 궁리, 2015, p110 프랜시스 크랙과 제임스 왓슨은 1953년 <네이처>지에 DNA의 나선구조 모델을 제안했고, 이와 관련된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그는 위 책에서 시각과 관련한 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12 Ronald T. Tellogg, 인지심리학, 시그마프레스 제3판, 2016, p.77  

*13 위니프레드 갤러거, 몰입, 생각의 재발견, 2010, 오늘의 책,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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