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굴포천을 따라 아라뱃길까지 가던 길에 잠깐 부천 아트 벙커 B39를 방문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꼭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방문하게 된다.
부천 아트 벙커는 독특한 공간이다. 지금은 문화예술공간으로 쓰고 있지만 원래 부천시 중동신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소각장이었다. 아트 벙커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주변은 모두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1기 신도시인 중동신도시로부터 불과 한 두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이 중동 신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시설이지만 대도시 생활공간과 너무 가깝다 보니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민원 대상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공간 재생:공간의 기억은 그대로
2010년, 마침내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의 폐쇄가 결정되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요구들이 있었지만,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은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로 결정되었고, 2018년 현재의 모습으로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아트 벙커에는 쓰레기 소각장이었을 당시의 시설과 공간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트 벙커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경비실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경비실이 아니라 쓰레기 계측소였던 곳이라고 한다. 또 건물 뒤쪽을 따라 죽 걸어가다 보면 소각장의 검은 연기를 뿜어내던 거대한 굴뚝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굴뚝은 현재 부천 아트 벙커 B39를 상징하는 마크로 쓰고 있다.
내부를 관람하다 보면 원래 소각장에서 쓰던 공간과 시설들 대부분을 원형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쓰레기 저장조로 쓰던 곳이다.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높고 깊던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난간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겁이 났다. 바닥을 보면 쓰레기 저장조라고 쓰여 있다.
원래의 공간을 그대로 살린 것 이외에 당시 쓰던 시설들 대부분도 보존되어 있다. 관람을 하다 보면 원래 있던 시설물인지,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시설물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서 한 참을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현재 여러 가지 설치와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벙커의 시설과 영상들이 묘하게 어울려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밋밋한 화이트 큐브의 전시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이 공간을 경험해보면 좋겠다. 관람자로서든 작가로서든.
보통의 전시 공간에서라면 작품이 전시 공간을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공간은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어떻게 해야 전시 공간과 작품이 잘 어울릴 것인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아트 벙커가 미디어 작품 위주의 전시를 많이 하는 데는 공간이 주는 특성도 한 몫하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부천 아트 벙커는 2018 대한민국 공공건축상(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부천 아트 벙커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홈페이지가 없다?! 다음에서 부천 아트 벙커로 검색을 하면 첫 줄에 B39.space/란 주소가 나오는데, 이것을 클릭하면 이상한 페이지가 뜬다. 이건 내 컴퓨터 탓인가? 그런데 핸드폰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네이버에서는 이마저도 안나온다. 구글 검색도 해봤는데, 홈페이지로 등록된 주소를 클릭하니 이상한 사이트로 연결되었다. 전에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곳저곳을 클릭하다가 간신히 네이버 블로그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블로그에서 아트 벙커의 역사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봤는데,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아트 벙커가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았다는 정보는 아트 벙커 홈페이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얻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변신했다는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자랑할만한 역사를 홈페이지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면 어떨까.(아마도 내가 못찾은 것일게다.) 현재 아트 벙커 홍보를 위한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데, 사이트 관리는 홍보의 가장 기본 중 기본 아닐는지. 블로그에 보면 아트 벙커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부천 문화재단으로 나오는데, 공간 운영하랴 리모델링하랴 바쁘겠지만 무엇보다 홈페이지 관리를 좀 더 신경써주면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