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눈이 눈답게 왔다.
오후 들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새파란 인조잔디 운동장에도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눈이 오니 마음이 바빠진다. 7교시 끝나자마자 종례를 서둘렀다.
갑자기 종례를 받던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뭔데, 뭔데?
나도 아이들을 따라 창 밖을 보니, 별꼴이다. 종례도 안 받고 한 대여섯 명이 운동장에 달려나가 글씨를 쓰고 있다. 앞엣 녀석이 두발로 눈을 꼭꼭 밟으며 나가면 나머지 녀석들이 그 뒤를 따른다. 얇게 쌓인 눈이 여러 명의 발자국 열기에 녹아 녹색 글씨가 된다. 행여 글씨가 삐져나갈세라 획과 획이 떨어진 곳은 펄쩍 뛰어 간격을 만들기 까지... 아이들이 쓰고 있는 글씨는 대충 이렇다.
시......바....ㄹ
자간도 크기도 자로 잰듯 정확하다.
바삐 써 놓고선 종례를 받으러 가는지 총알같이 뛰어 교실로 사라진다.
내일부터 기말고사다. 그래. 니들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종례가 끝나고, 이내 다른 아이들 발자국으로 운동장이 어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