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생님들과 함께 그림 한 점을 감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해요.
보기에 어떠신가요? 귀엽지 않나요? 납작납작....
이 못생긴 그림이 대체 뭐냐고요? 이 그림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그린 정물화예요. 맞아요.... 보고 또다시 봐도 진짜 못 생겼죠. 이 그림이 뭘 그렸는지는 혹시 알아보시겠어요?
다른 그림과 나란히 놓고 감상해 볼까요?
물통에 담아 놓은 붓과 물감을 그렸군요! 물통과 붓을 저렇게나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니!
이 학생은 수행 평가에서 어떤 점수를 받았을 까요?
다른 그림을 한 장 더 볼까요?
그림 앞쪽에 있는 두 개의 끈이 달린 생쥐처럼 생긴 저 괴상한 물체는 무엇일까요? 실은 저 물체는 글루건이에요. 두 개의 꼬리는 전선이고요. 시원~스럽게 요약해서 그렸네요. 그러면, 오른쪽 용기에 담긴 대파 뿌리 같이 생긴 저건 또 뭘까요? 다른 학생들 그림에서 확인해 볼까요? 아하 꽃을 그렸군요.
위 그림과는 확실히 수준 차이가 나네요. 같은 대상을 봤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요? 이 아이들이 같은 것을 보고 그리기는 한 걸까요?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처음의 파란색 그림과 보라색 그림을 나란히 한 번 볼까요?
짐작하셨겠지만, 이 두 장의 그림은 모두 한 학생이 그렸어요.
저는 이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어요. 먼저, 최선을 다한 아이의 정성이 보였어요. 특히 두 번째 그림을 보면 이 아이가 얼마나 그림에 정성을 들였는지, 아이에게는 기물들이 실제로 이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다음으로, 두 장의 그림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느껴졌어요.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좀 더 잘 보일 거예요. 만일 왼쪽 정물화 한 장만 그리고 수행 평가를 했다면 이 학생은 분명히 C를 받았을 거예요. 아마 저는 이렇게 투덜거렸겠죠.
'아, 뭐냐? 대체 뭘 보고 그린 거야? 진짜 남학생들 수준이란....'
그런데 두 장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서 이 아이의 수행 과정이 점차 납득이 되는 거예요.
작년부터 저는 한 가지 주제를 조금씩 변주하는 실험을 시작했어요. 이 수업도 그중 하나로, 일종의 드로잉 프로젝트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별한 과정을 개발한 것은 아니고 재료나 대상을 바꾸면서 좀 더 긴 시간 학습하는 거죠. 아이들은 비슷한 듯 차이 나는 내용의 수업을 반복하면서 점차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이행해 가는 거죠.
선 연습을 하고, 연필, 펜, 물감 등 여러 재료로 컨투어 드로잉을 하고, 물감의 삼원색을 섞어보고 농도도 연습하고 꽃 그리기도 하면서 재료와 관찰에 익숙해진 후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수행 평가를 해요. 한 시간에 한 장씩 서로 다르게 배치한 기물을 보면서 두 장을 그리는데, 그게 이 작품들이죠. 모든 과정에서 연필 스케치는 안 해요. 컨투어 드로잉 하듯 붓으로 바로 그리는 거죠. 이 수업에서 중요한 학습 과제 중 하나는 그러데이션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작품에 나타나야 하고요.
잠시 학생들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이렇게 몇 명의 학생 작품을 봤는데, 아이들마다의 그림은 차이를 드러내지만 한 사람이 그린 두 장의 그림은 유사성을 보이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그렸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와 같은 차이와 유사성은 왜 생기는 걸까요?
재료와 도구 사용은 매우 습관적인 것이라서 우리는 무엇을 사용하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어요. 오직 학습을 통해서 만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수업에서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더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겠죠. 각자의 선행 지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양도, 그 수준도 각양각색이 될 거예요. 이때의 학습은 교사의 시범이나 학습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한 것, 주변 친구들의 그림을 보면서 깨달은 것 등 그 모든 것을 포함해요.
또, 아이들은 각각의 수준에서 미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 또한 아이들의 표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거예요. 자신의 지향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의 그림은 이 모든 조건이 만난 결과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본 파란색 그림은 아마도 자신의 지향과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타협한 결과일 확률이 높아요. 지향은 있지만, 또 미술 선생님이 요구하는 목표를 알고는 있지만 손이 거기까지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높거나 외부로부터 어떤 강한 시각적, 심리적 충격이 가해진다면 성장의 폭은 더 커질 거예요. (많은 미술 선생님들이 새로운 수업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겠죠.) 만일 아이들이 다른 수준의 미적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요.
저는 아이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와 같은 표현의 유사성을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봐요. 우리는 흔히 스타일이란 전문 예술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반복하면서 아이들도 자신만의 스타일(자신만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스타일이란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표현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의 저는 아이들에게 저 하던 대로, 습관적으로만 그린다고 나무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 장을 그리면서 더 나아지는 게 보이고, 더 잘 그리고 싶은 아이들의 의지가 느껴진다면, 재료와 도구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다루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학습 목표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그걸 인정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투명 수채화 기법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