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 월, 글을 써놓고 올리지 못한채 시간이 흘러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이 가을에 난데 없는 벚꽃이 왠말이냐고 하실 것 같네요. 내년 봄에 일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애매해서 올려봅니다.
창밖이 부옇게 밝아오는데도 눈을 뜰 지 말 지 망설여지는 아침이다. 친구가 먼 길 온 우리를 위해 난방을 펑펑 틀어준 덕에 방바닥에서 쉬이 몸을 떼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무주. 공기 맑고 산세 좋은 청정 지역. 오늘 아침 내가 이곳 무주에서 눈을 뜬 까닭은 이곳으로 근무지를 옮긴 친구를 만나러 왔기 때문이다. ktx를 타고 대전역으로 와서, 대전 복합터미널의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장장 세 시간의 여행 끝에 이곳에 도착한 여기는 무주. 이제 슬슬 잠은 깨고 있지만 여전히 늘어져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아침이다.
"산책 가자."
방문 너머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매일 새벽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친구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그래, 가자."
옷을 챙겨 입고 함께 길을 나선다. 발에 흰 털이 있어서 장화를 신은 것 같아 이름이 장화가 된 '장화'와 듬직한 체구에 움직이는 것도 묵직한 '하반이',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친구와 함께 산책길을 나선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이틀 전만 해도 추웠는데 이른 아침인데도 포근하다. 이곳에도 벚꽃은 지천이고 풀숲 사이 보라 제비꽃, 노란 민들레, 냉이꽃도 지천이다. 온 세상이 한꺼번에 봄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듬직한 하반이는 걷고, 장화 신은 장화는 촐랑촐랑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이내 쏜살같이 내달렸다 멈춰 서기를 반복한다. 좋은 기운이 마음에 충만해진다.
실컷놀아서 지친 강아지들과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함께 걷던 친구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오메, 누가 꽃을 꺾어서 길에 버려부렀어야."
발치를 내려다보니 누군가 버리고 간 벚꽃 한 가지가 길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네. 이라고 버리고 갈걸 왜 꺾어 버렀으까나."
친구는 허리를 굽혀 그 꽃을 주워 들었다.
"뭐 하게?"
실용주의자인 내가 말했다.
"아깝잖아."
"갖다가 뭐 할라고. 어차피 짐인데."
낭만주의자인 친구가 말했다.
"뭐 하기는. 집에 갖다가 꽂아 놓을라고 그라제."
두어 걸음 앞에 또 다른 벚꽃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친구는 그 꽃도 마저 주워들었다.
가져가 봐야 어차피 시들어질 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버릴 일을 걱정하고, 친구는 채 시들지 않은 벚꽃이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을 애달파한다. 땅에 떨어진 벚꽃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니 않는 친구에게서 삶의 자세를 배우는 봄날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