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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n 03. 2024

코딱지와 인공지능

미술 표현의 가치를 생각하며

우리 곁의 인공지능


동생은 동화 작가다. 최신 문물에도 호기심이 많은 동생은 가끔 챗 GTP를 써본 이야기를 형제들 톡방에서 풀어놓곤 한다.

최근의 일이다. 동생이 오랜만에 형제들 방에 긴 문자를 보내왔다. 쳇 GTP에게 지금 쓰고 있는 책 주제와 최근 썼던 시에 대해 감상을 묻고 받은 답글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은 우리의 반응은 '헐~!'이었다. 내용이 길어서 다 적기 어려우나, 문장은 구조적이고 표현은 자연스러웠으며, 시에 대한 감상평도 되게 인간적이었다. 인공지능의 시에 대한 감상평 중 마지막 문장은 특히 놀라웠다.


.... 글의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며, 끝맺음은 여운을 남깁니다.


시의 주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여운을 남긴다'니. 여운을 진짜 느껴서 쓴 표현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이런 표현은 놀랍지 않은가?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비평까지 하는 세상에서, 심지어 우리 인간보다 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고, 인간의 글에서 정서와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마당에 오류투성이인 우리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 활동을 하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근 오픈 AI사의 신제품(?) 발표가 또 한 번의 충격을 세상에 던졌다.

https://youtu.be/T_oJuCl7NZM?si=gaM4nawHVewqwgvG

동영상에서, 인공지능은 실시간으로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학생의 학습을 격려하고, 감정을 읽어준다. 또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을 실어 동화구연도 한다.

인공지능이 인격을 갖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이대로라면 십여 년 전의 영화 'HER'가 그린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예측불허인 인간과 인간의 불안전한 관계보다 나의 감정을 잘 읽어주고 위로해 주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이미 금기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지 않던가?

https://youtu.be/gX2PB_9eBBI?si=ujAlzOFs7OHxJwdS

미술은 어떨까? 우리는 인간 만이 창작을 하고 상상을 한다고 생각하고, 창의성의 영역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영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과 창의력을 벌써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음악 분야는 이미 인공지능의 작곡 능력을 활용하고 있다지 않는가? 수년 간의 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예술의 성취를 수 천 년의 누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불과 몇 분 만에 그려내는 세상이 도래할 것인데, 그렇다면 미술의 의미는 사라질까?


미술 표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며

미술 교사인 나는 지금이야말로 '표현'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표현의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아기는 그리는 법을 몰라도 펜이나 크레파스를 손에 쥐면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성인인 우리 눈에는 의미 없는 선 몇 개지만 아기는 스스로의 환영을 덧붙이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린다.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가 둥근 원 안에 지렁이 같은 선 세 개를 그려 넣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것을 발견했다. 단팥빵인가? 궁금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코딱지란다! 그게? 왜? 어째서? 어디가? 하지만 그것이 코딱지라는데 나의 동의 여부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딸아이는 이 코딱지그림을 꽤 오랫동안 즐겁게 그렸다.(너무 흥미로워서 보관해 놓았는데, 그 그림을 찾다가 실패했다.)

어린이의 그림은 유형화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같은 유형의 그림을 지루해하지도 않고 몰입하여 즐겁게 그린다.

아래 사진은 피규어 만들기 방과후 수업 사진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입시와 상관없는 피규어 방과후 수업이라니.... 처음 수업을 개설했을 때는 과연 누가 올까 싶었다. 심지어 우리 학교는 남자학교. 뜻밖에 여러 아이들이 신청을 했고, 아이들은 수업 시간마다 몰입하여 피규어를 만든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피규어 만들기> 방과후 수업에서 몰입하고 있는 학생들

어디 그뿐이랴.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어른들 또한 주변에 많다. 문화센터, 주민센터,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강좌를 떠올려 보자.

나는 언젠가 충남 공주시 두만리를 방문하여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뒤늦게 알게 된 어르신들을 만난 적이 있다. 최소 60세에서 8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그리기는 일상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셨다. 농부이기도 한 그분들은 농사짓는 시간 이외의 대부분의 여가 시간은 그림 그리기로 채우셨다.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좋은 것을 왜 진즉 몰랐을까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려서 도시에 사는 손녀에게 보내주면 손녀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내준다고 자랑하신 분도 계셨다.

공주 두만리 농부 화가들과 작품들. 공주시내의 갤러리 수리치에서 여러 번 전시회도 했다.

표현의 두려움은 학습의 결과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을 걷어내면 누구나 표현의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고차원의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가 그에 대해 감동하고 감탄하게 되는 세상은 조만간 오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 무언가를 감각하면서 표현하고, 표현의 과정에 몰입하는 즐거움, 성취의 만족감은 그 누구도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 표현의 과정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함'을 오롯이 느끼는 것. 무엇과도 대체불가능한 표현의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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