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고흐의 진품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고흐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라마틱하지만 불운했던 그의 삶이 함께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삶의 여정마다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남겼고, 고흐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그의 내밀한 감정까지도 함께 느끼고 가슴 아파한다. 어디 고흐뿐이랴. 미술교과서에 자주 등장했던 프리다 칼로나 여러 예술가의 자화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왜 자화상을 그릴까? 그들은 왜 자신의 행복과 불행, 삶의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퍼올릴까? 혹시 그들은 자신을 남김없이 노출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노출증 환자였을까? 작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힘에 떠밀려서 일지도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어떤 충동이라니, 평범한 미술교사인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자신을 꾸밈없이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작가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예술적으로 승화를 시키는데, 수업에서 학생들은 어떨까? 이와 관련한 기억 몇 가지가 떠오른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한 여자중학교 2학년들과 자화상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한 반 담임선생님이 찾아오셨다. 말씀의 요지인즉, 그 반 아이가 자화상 때문에 집에 와서 울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얌전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라 은근 눈길이 가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자화상이란 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게 그려야 하는 것이니 신체적 특징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아이의 특징은 눈썹에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으니, 눈썹은 그 아이에게 가장 큰 핸디캡이었던 거다. 그걸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는 '눈썹을 강조해야지'라고 이야기했고, 심지어 손수 강조해서 그려주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 학생의 얼굴과 이름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아마도 젊은 시절의 나에게 꽤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후의 일인데, 역시 여자중학교 2학년 수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번 수업 주제는 자신의 인생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짧은 14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거나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장면을 선정하고, 그 사건들을 상징하는 사진과 이미지, 문자를 통합하여 표현하는 수업이었다. 한참 학생들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봐주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비밀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그것도 넣어야 해요?'
부모의 이혼은 그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혼이 드물지 않은 지금도 그렇지만 십 수년 전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이 수업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수업이다 보니 그 일을 제외하고는 14년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는 거다. 학생 개개인을 교사가 다 알지 못하니 살짝 뺀다 한들 누가 알겠느냐만, 밝히고 싶지 않은 삶의 단면을 노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그 순진한 학생은 얼마나 고민스러웠겠는가?
그제야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아이들의 현실 삶도 정말 다양할 터인데, 나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너도 네 삶을 진실하게 표현해야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는 예술가가 아니었고 이건 그냥 미술 수업일뿐이니까.
'괜찮아. 뭘 넣을 건지는 네가 선택하는 거야. 넣고 싶지 않으면 당연히 안 넣어도 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두 번의 경험 이후로 나는 아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수업을 덜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미술 표현이란 다양하고, 좀 더 안전한 방식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우리는 매해 수업주제를 정하고, 학생들은 우리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자신의 표현을 펼친다. 때로 방 한 칸에서 부모 형제들과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방을 디자인하라고 하기도 하고, 스스로 싫어하는 신체 특징도 표현하도록 지도한다. 때로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끄집어내게 안내할 때도 있다. 물론 현재의 삶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을 미술 수업을 통해서 꿈꿀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표현을 통해 객관화해 보는 경험이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상황,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노출하는 것은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미술수업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