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험은 '주의맹'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다. 우리는 흰옷 입은 사람이 얼마나 공을 튀기는지 세느라 고릴라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와서 가슴을 두드리다 나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커튼 색이 바뀐 것 역시 못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같은 공간, 같은 경험을 할 때에도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보고 싶은 것을 먼저 보고,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버린다. 이것이 '주의'라고 하는 심리적 에너지의 특징이며, 우리가 같은 것을 경험해도 다른 것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주의'를 기울여 보고 있는 것들이 나를 결정한다.
수업 시간, 학습 주제에 학생들을 주의집중 시키려고 시도하는 교사는 바로 이 '주의'라고 하는 심리 에너지를 끌어내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주의는 쉽게 흐트러 진다. 주의라는 심리에너지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흐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익숙해진 것에는 주의 에너지를 배분하지 않으며, 주의는 늘 새로운 것을 향해 흐른다. 교사가 수업의 도입 부분에서 동기유발을 계획하고, 수업 곳곳에 주의를 끌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하는 이유다.
보는 행위는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눈으로 어떤 것을 '본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저것'을 남들도 나와 '똑같이'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직접 봤으니 그보다 더 객관적이고 분명한 사실이 어디 있을까? 과연 그럴까?
착시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착시현상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몰라서 속고, 알고 있으면서도 속는다는 착시.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러 착시가 발견되었고, 학자들은 해마다 새로운 착시를 찾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코카콜라의 빨간색 같은 착시 말이다.
좌. 잘 알려진 고전적인 착시 / 우. 가운데 검정색을 바라보면 원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코카콜라의 빨간색은 사실 없는 색이다. 사진을 클릭하고, 빨간색 부분을 확대해 보자. 검은색 띠만 보일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 뇌는 때로는 없는 것도 만들어 보여준다.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태면서 말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우리는 이 그림에서 두 개의 삼각형을 본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우리의 뇌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뇌는 우리 시각의 불완전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미지 출처:http://www.rorschach.co.kr/site/introduce 로르샤흐 코리아
우리는 내가 보고 있는 '저것'을 보고 있는 남들도 나와 '똑같은 것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그럴까?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다른 것을 본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벽면의 얼룩을 보면서 누군가는 나비를 상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도깨비를 상상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아무래도 우리 뇌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작은 얼룩 하나까지도 어떻게든 해명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애쓰니까 말이다. 이때 상상하는 것들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온다고 한다. 유명한 로르샤흐 검사는 잉크 얼룩과 같은 애매한 시각적인 자극을 형태가 명료한 대상으로 바꾸는 과정을 통한 심리검사다. 같은 것을 보는데 나처럼 착한 사람의 연상과 범죄자의 연상이 다를 수 있다니.... 다른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어떤 상상을 떠올리는지,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다.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행위인지를 알 수 있는 게임이 있다. '색 전문가 판별 게임'인데, 내가 무지 좋아하는 게임이다. 가급적 눈이 덜 피로했을 때 해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레벨이 높게 나온다. (특별히 사는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바쁜 월요일, 게임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게임 요약본을 준비했다.(게임 링크는 맨 아래에 있으니 잠 안 오는 날 해보시길 권한다. 눈이 피곤해져서 금방 잠드는 의외의 효과가 있다.)
요약하자면, 게임은 색감차가 아주 많아 쉽게 구분이 가능한 단계에서 명도, 채도차가 아주 작은 높은 단계로 올라간다. 레벨이 높아지면 바둑판 숫자도 점차 많아진다.
부끄럽지만 내 레벨은 보통 수준이다. 나는 하늘색 판에서 다른 색을 찾다가 게임이 끝났다. 내가 아는 작가님 한 분은 꽤 높은 수준까지 색을 구분했다. 부러웠다. 나 같은 일반인들 보다야 아무래도 물감을 많이 다루는 전업작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도 명색이 미술선생님인데.... ㅠㅠ
색구분 테스트 게임을 굳이 소개한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대상을 볼 때는 물론이고, 특히 색을 볼 때 모두가 같은 강도로 보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매우 섬세하게 다채로운 색의 변화를 느끼지만 누군가는 밋밋한 색면만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학생들에게 왜 그게 안 보이냐고 다그쳤던 어제의 '나'님을 혼냈습니다. ㅠㅠ)
그렇다. 내가 보는 세상과 당신이 보는 세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감각이 그렇듯이 자주 접하고 사용할수록 점차 민감해질 확률이 높다. 미술수업에서 물감을 섞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들고, 물로 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칠해보고, 대상의 색감을 표현하는 모든 활동은 색채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물감을 다루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운 일임을 깨닫는 것은 덤. 실제로 학생들은 물감을 섞으면서 새로운 색이 나오는 과정을 생각 이상으로 신기하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다소 귀찮지만 물감을 만지는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