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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n 24. 2018

9-4. 우리 동네, 한 장 잡지 만들기 프로젝트

이미지와 글로 표현하는 <우리 동네>

이전 글은 9-3. 이미지 읽기와 편집의 이해입니다.
수업을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은 정말 많다. 대부분은 이미 학습한 내용이지만 학생들이 입시와 관계없는 미술과 같은 비인기 교과의 내용을 기억하고 올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면 안 된다. 대신, 학습지 한 장에 평가, 진도, 배운 내용, 편집을 비롯하여 제작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사항을 정리해서 나눠주면 수업을 진행하는데 서로 도움이 된다. 
다음은 수업에 사용한 진도 안내 학습지 파일과 안내 내용의 일부분이다. 

○ 이번 수업의 평가는 잡지의 전체 내용편집디자인보고서 등을 통해 평가합니다.

○ 잡지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우리 동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동네의 모습이 이렇구나 하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으면 재미있는 잡지가 되겠지요.  

○ 잡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편집 디자인이 통일감 있게 디자인하도록 해야 하며, 의미 없이 꾸미는 그림은 감점입니다. 예를 들어 뽀로로나 만화주인공을 아무리 정교하게 잘 그렸어도 전체 잡지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으면 안되겠지요. 

○ 경쾌한 분위기인지, 진지한 분위기인지, 비판적인 성격인지에 따라서 문자디자인, 잡지 색채, 전체 구성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진지한 내용에 핑크? ..........어울릴까요?? 

○ 이전 시간에 이야기했던 편집디자인에 대해 잘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하기 바랍니다. 

   마음 가는대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감 있고 균형 있는 디자인이 되려면 칸을 넓히고 좁히는 방식을 사용하여 위치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꼭 들어갈 내용제호(잡지 제목), 발행인(본인 반번호와 이름), 창간호 / 기사(이미지와 글, 

   기사 제목, 내용), 그림(경우에 따라 생략 가능), 기타 


잡지의 형식을 갖추자

비록 한 장이지만, 잡지는 잡지이니만큼 갖출 것은 갖춰야 한다. 


전체 크기는 5절 도화지로 제한한다. 이미지를 편집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붙이는 등, 정해진 수업 시간에 모든 요소를 넣어 완성하려면 너무 커서는 안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5절 크기 정도가 적절했던 것 같다. 


주제 정하기

잡지의 주제는 제한하지 않았다. 지역 상가 정보지 같은 잡지가 있는가 하면 오래되고 낡은 것을 주제로 한 것도 있었고, 환경이나 어린이 보호 같은 계몽적인 내용의 잡지도 있었다. 사실, 이런 지역 상가 정보지 같은 잡지를 허용해야 하나 싶어서 많이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동네 치킨집을 소개하는 게 왜 안돼요?' 
'동네 팥빙수 가게의 맛을 비교해서 정도를 제공하는 게 왜 안돼요?'
'미술 숙제하려고 주말에 동네 빙수집을 모두 섭렵했는데, 왜, 왜 안돼요?'


아마도 내 마음속에 내가 생각했던 동네의 모습, 바람직한 잡지의 내용에 대한 기준을 이미 세워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수업을 하면서 가졌던 나의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오래된 동네의 모습이나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 동네의 이웃을 찍은 사진들에 더 마음이 가는 나를 발견했다. 미술교사는 모름지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교사의 사고에 의해 고정되고 제한되어서는 안 되는데, 참 어려운 것 같다. 




인쇄 서비스

잡지에 필요한 사진은 학생들이 신청할 경우 모두 출력해준다. 


이 수업을 진행한 학교는 원도심에 가까운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빌라와 단독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집에 인쇄잉크가 가득 찬 프린터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인쇄 숙제를 내주면 사진에 가로줄이 잔뜩 나 있거나 삼원색 중 한 가지 색이 부족한 이상한 색의 인쇄물을 가지고 오기 일쑤였다. 학생들이 사용한 이미지를 통해 주변 환경을 더 잘 알게 되었는데, 주변에 동네 주민들이 경작하는 밭이 있는가 하면 아주 낡은 벽화가 그려진 주택지가 있고 심지어 연탄가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 인쇄물은 이 수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쇄물의 퀄리티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업 과정에서 과제물 제출 상태를 체크하거나 수업 참여도를 수시로 체크하여 과정 평가를 하고자 노력하기는 하지만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위해 공정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다른 친구들보다 나은 출력물을 사용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결과물 또한 잘 만들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했다고 보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출력 신청을 한 학생들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모두 출력을 해주었다. 


출력 요청은 메일이나 카페 게시판을 활용했다. 더러는 자신의 메일로 보낸 후 교무실에서 파일을 열러 출력해주는 방식을 쓰기도 했다. 


레이아웃 먼저, 표현 나중

잡지에 들어갈 사진과 기사를 정하고 나면 화면 분할을 시작한다. 이때, 도화지의 면을 분할하여 사진과 글이 들어갈 위치를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자와 컴퍼스, 연필을 사용해서 전체 화면을 가로, 세로 선으로 분할하고, 넣고자 하는 기사의 중요도에 따라 면의 크기를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부분에 꾸밈을 넣을 것인지, 기사와 사진의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출력할 사진의 크기도 쉽게 결정할 수 있다. 화면 분할이 결정되면 이후 과정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다.



표현기법

만드는 과정에서, 표현 기법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물감이나 색연필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고, 모자이크를 할 수도 있다. 글을 적을 때에도 따로 제한을 두지 않고 프린트 출력해서 붙이거나 손글씨를 쓸 수도 있다.


기사 작성

기사에 대한 교사의 지도는 비문을 바로잡거나(이것도 사실 힘에 부치기는 했다.) 간혹 눈에 띄는 맞춤법을 수정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미술 수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체적인 디자인에 집중하였다. 만일 국어과와 협업이 가능하다면, 국어 수업시간에 기사 쓰기를 진행해서 미술 시간에 화면에 배치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보고서 작성과 발표

 보고서 작성과 발표 시간 수업은 모둠으로 진행한다. 4명 한 모둠으로 책상을 배치하고, 각 모둠에 아래에 링크한 학습지를 나눠준다. 발표날 학습지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요령과 수업 과정을 설명한 학습지이고, 보고서 양식은 학생들이 작성해야 할 보고서 양식이다. 수업 과정 학습지를 나눠준 이유는 이 수업이 프로젝트 수업으로, 오랜 시간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체 수업 과정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수업 과정을 정리한 학습지를 보면서 자신이 배운 내용을 다시 돌아보고, 한 시간 동안 보고서를 정리한다. 

개인별로 보고서 작성이 끝나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서 모둠원에게 자신의 잡지에 대해 설명한다. 학생들은  서로의 작업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끝나면 각 모둠에서는 모둠의 대표로 잡지와 보고서 내용을 발표할 대표 한 사람을 뽑는다. 이 사람은 모둠의 대표로, 자신의 잡지에 대해 학급 학생 전체에 설명할 기회를 갖게 된다.


다음은 수업 시간에 발표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동네는 빌라 밀집 지역인데, 큰 상가는 별로 없고 작은 상가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판이 제각각이고 저마다 독특한 색상과 글씨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 동네 간판은 참 어수선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그 촌스러움이 의외로 생기 있게 여겨져서 우리 동네 간판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 

처음에 모둠 아이들과 동네 탐방을 나섰을 때 찍어서 제출한 과제사진입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뭘 찍어야 할지 몰라서 대충 막 찍고 맘에 안 들면 지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진이 마음에 들 때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사진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려면 시점이나 구도와 같은 요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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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고 비평하면서 자신을 찍을 때 수직 수평을 맞추고 눈높이와 구도를 생각하게 되면서 제 느낌이 사진에 잘 나타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때 빛을 생각하면서 찍으면 더 재미있겠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같이 돌아다녔던 친구들이 찍어서 제출한 카페 사진을 보면서, 저와 함께 다녔는데 찍은 내용이 다른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다른 사진을 찍었을까 생각해보니 서로의 취미나 관심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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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단원에서는 같은 사진도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져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객관적이지 않고, 찍는 사람의 생각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신문이나 잡지 사진을 보게 되면 이 사람이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생각하면서 볼 것 같습니다. 

■ 

우리 동네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맛집과 재미있는 간판이 있는 가게를 중심으로 배치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표현 방법은 지도는 그리기를 했고 간판은 사진을 찍어 필요한 크기로 출력한 후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글쓰기는 가능하면 국어시간에 배운 시의 느낌으로 낭만적인 표현을 하려고 했습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미술시간에 글도 쓰고 동네 답사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다 보니 조금 힘든 면도 있었는데 그러면서 잘 모르던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수업을 하면서 우리 동네에 골목이 참 많고 골목마다 특색 있는 가게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진 찍으러 가면 가게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곳도 있고 귀찮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설명을 해드리면 진짜로 잡지에 광고 나오는 줄 오해하시는 분도 있어요.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했는데 사진 찍으러 다니면서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동네를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아요. 이상입니다. 


다음 글은 <골목이야기, 한 장으로 만드는 잡지 학생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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