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린의 세계만화일주
어릴 적, 눈 빠지게 봤던 책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매직아이였지요. 그 안에 뭐가 살아 움직인다네요? 어쩌고 저쩌고 알려주는데, 암만 노력해도 상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꾸 고개를 갸웃하자, 책 주인이자, 저를 괴롭히던 짝꿍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볼 때까지 집에 몬 간다, 알았나?’ 한참 눈에 힘을 줬습니다. 머리가 빙빙 돌았습니다. 녀석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 어? 보인다, 보여!’
지금 우리는 3D 영화의 시대에 삽니다. 눈에 힘주지 않아도 평면에서 입체가 펄럭이고, 인공 기술이 자연의 신비를 빚어냅니다. 입체영화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 이색 체험 취급이었지요. 기술 부족으로 인한 어지럼증 때문이었지요. 그랬던 3D 영상이 우리 삶과 가까워진 건, 안정감을 갖춰 비교적 보기 편안해진 리얼 디 쓰리디 방식이 나오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진화 과정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3D의 거장, 레니 립턴(Lenny Lipton)입니다.
립턴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대학 시절 쓴 즉흥시에 친구가 곡을 붙였고, 큰 인기를 얻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요. 레니 립턴은 오래전부터 영화에 관심 있었고, 작사료를 밑천 삼아 영화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체 영상 개발로 우리 삶에 즐거움을 불러왔지요. 그가 쓴 노래는 바로, 한때 미국의 국민가요였던, <퍼프 더 매직 드래곤(Puff the Magic Dragon)>입니다.
바로 이 팝송의 인기에 힘입어 탄생한 만화영화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말하기 거부하는 소년 재키가 용 퍼프를 만나며 시작됩니다. 둘은 아름다운 마법의 섬 호나리로 가는 길에 무시무시한 모험을 만나지요. 용은 겁먹은 재키에게,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어렵게 다다른 호나리는, 용이 떠난 사이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용은 모든 걸 포기하려 하지요. 하지만 두려움과 맞서는 법을 배운 재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호나리를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고, 마침내 말문을 트게 되었지요. 그리고 바로 이 만화가 나오던 즈음, 대한민국 정권은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을 금지곡으로 발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FyhTBvLu4w
당시 우리 국민들은 두려움과 맞서는 중이었습니다. 지도자가 행정과 법을 장악하고, 원하는 자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힘을 가지며,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금지하고, 왕처럼 평생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위험한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겠지요. 저항의 몸짓이 시작됐습니다. 가장 우렁차게 민주주의를 외치던 곳은 대학가였습니다. 이를 째려보던 정권, 킹왕짱 유치하고 비겁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그건 바로 민주주의를 되찾으려 나선 젊은이의 뜨거운 외침을 철부지의 모습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그들은 온 나라에, 젊은이의 문화가 해롭다는 생각을 서서히 주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예인들이 대마초를 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요. 마약 범죄 전체 규모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었으나, 정권은 이 사건을 지나칠 정도로 떠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인기스타라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온 나라에, 그런 가수의 음악을 즐기는 청년은 통제가 필요한 인간이라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권은 학생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정당화하며, 젊은이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려 애썼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띈 게 바로,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이었습니다.
이 팝송이 나온 건, 1963년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거리마다 젊은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하나요?’ 그들은 베트남전의 잔혹함에 질려있었고, 전쟁 반대, 인간성 회복을 외쳤지요.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싶어 했지요. 그 과정에서, 정신과 감성을 해방하자며 마약을 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의 문화가 되어 다양한 모습의 예술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종종, 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마약과 무관함에도 마약 관련이라 오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매체가 폭탄을 던졌습니다.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이 마약 이야기라는 분석을 내놓은 겁니다. 그들은 연기를 뿜는다는 뜻의 퍼프(Puff)라는 이름을 가진 용에 대한 노래가, 대마초 피우는 행위를 말한다고 떠들어 댔지요. 소문은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레니 립턴이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우리나라에, 바로 그런 자극적인 소문이 유용하게 쓰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지요. 젊은이들의 문화에 새겨진 주홍글씨,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여, 진실을 가리던 시절의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레니 립턴의 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용과 인간 소년이 친구가 되었고, 소년과 함께인 용은 자신감이 넘쳤다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어쩐 일인지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용은 슬펐다고요. 립턴 선생이 말하고 싶었던 건, 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이랍니다.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이 금지되었을 무렵, 우리 젊은이들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15pxWUXvLY
3D 기술의 거장, 레니 립턴은 2022년 10월 5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바타2> 개봉을 앞두고 전 세계가 두근두근하던 때였지요. 우리 보는 세상을 그대로 살려내고자 했던 3D 영화, 그리고 그것을 편히 바라보게 만들고자 했던 레니 립턴. 지금, 어딘가에 어지러운 세상을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을 보라고 강요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게 진실이라고 외치는 똥멍청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편안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3D의 기본 원리는 양안시차로 생기는 입체감입니다. 눈과 눈 사이의 거리, 미간 때문에, 양 눈이 잡는 상에는 차이가 있지요. 우리 뇌가 이 두 이미지를 포개주기에, 그 순간 마법처럼 입체감이 생깁니다. 레니 립턴 씨가 만든 리얼D 3D(RealD 3D)는 좌우에서 찍은 화면을 굉장히 빠르게 교차하여, 보다 생생하고 안정감 있는 장면을 보여주지요.
이곳저곳을 오가며, 편안함을 불러오는 기술. 마치 만화 속에서 두려움과 용기를 오가며, 마법의 섬에 생기를 불러오는 재키의 모습 같네요. 또한, 끊임없이 공포를 이겨내며, 세상에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목소리 내는 이들과도 닮아있네요. 그래요,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자들로부터, 편안한 세상을 찾아오는 비결, 어쩌면 바로 거기 있지 않을까요?
레니 립턴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enny_Lipton#/media/File:Lenny_Lipto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