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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May 01. 2021

- 밤이 꽤 길었다

아이와의 잠자리 실랑이,위로받고싶은 밤


 우리 아이는 유난히 잠이 없다. 다른 집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낮잠은 2시간 기본에 밤잠은 10시간에서 12시간은 잔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는 많이 자야 낮잠 2시간, 밤잠 10시간이다. 물론 아이마다의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에 비교하면 안 된다. 그래서 스스로 비교하지 말자 되뇌지만 아이와의 잠자리 전쟁을 벌일 때면 어느새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 잠이 없는 아이가 영민하다는 근거 없는 소리로 마음의 위로를 삼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한다. 덜 영민해도 좋으니 잠 좀 많은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둘째는 제발 잠 많고 덜 예민한 아이가 태어났으면... 바라고 또 바란다.

 

 오늘도 역시 좀처럼 잠드려 하지 않는 아이와 잠자리에서 1시간을 실랑이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며 성시경 DJ 저리 가라 달콤한 목소리로 굿 나잇 뽀뽀를 날리며 아이의 온몸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말똥말똥 장난기 어린 눈빛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이 반쯤은 풀리고 초점이 흐려져있어야 이내 잠들 텐데... 


'아 오늘도 망했다.'

 

 이런 나의 슬픈 예감은 어찌 잘 들어맞는지. 오늘도 아이는 밤을 부술 기세였다. 수면인형인 '코코', '다스' 이름을 들먹이며 이 인형들과 함께 너도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고운 목소리로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설득했지만... 아이는 뻔한 레퍼토리에 질렸는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00아, 이제 잘 시간이야. 오늘 잘 자야 건강하게 내일 놀 수 있는 거야."

"(도리도리, 우당탕탕)"

"00아, 얼른 안 들어와? 엄마는 이제 엄마 침대에서 잔다. 안녕."


 아나운서 버전의 엄마가 통하지 않자 이번엔 엄한 엄마 버전이다. 세상 상냥하고 좋은 엄마는 통하지 않으니 엄한 엄마, 잠에서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엄한 엄마가 되자 라는 다짐을 되새기며... 목소리를 한 껏 내리깔았다. 하지만 아이는 엄한 엄마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위라도 하듯 잠자리를 벗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 깜깜한 거실을 활보하고 돌아다녔다. 40분의 실랑이에도 아이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녹다운되어가는 것은 나였다. 난 최후의 수단인 내 침대에 올라가서 자는 척 연기하기를 선보였다. 아이는 자신의 잠자리에서 늘 같이 누워 자신을 재워주는 내가 본인의 잠자리를 벗어나면 몹시 불안해했다.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지쳐버린 난 내 침대에 올라가 아이에게 온몸으로 선전포고 한다. 


 '엄마도 이제 힘들어. 이 시간이 지나면 엄마는 널 재워주지 않을 거야. 네가 알아서 자야 해.'라는 무언의 협박인 제스처였다. 아이의 원래 반응이라면 침대에서 자는 척하는 나를 보며 대성통곡하고 침대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아이를 안고 달랬다. 그리고 '왜 제시간에 자야 하는지' 설명을 하고 아이를 눕혔을 것이다. 


'엥? 뭐지?'


 한참이 지나도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난 아이의 행동이 궁금해 실눈을 뜨고 아이를 관찰했다. 아이의 행동은 사뭇 달랐다. 울지 않고 천천히 내 곁으로 걸어왔다. 자는 척하는 내 곁 침대 끄트머리에 서서, 내 팔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비비고 한참을 애교 피웠다. 


'아! 나보다 한 수 위인 아이에게 당하고 말았다.'


 난 아이를 안고 자야 한다고 말하며 나 또한 아이의 잠자리로 내려와 같이 누웠다. 아이는 그때부터 잠자리 위에서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잠이 너무 안 오지만... 엄마 때문에 노력해볼게.'라는 제스처 같았다. 

아이는 잠이 오질 않는지... 잠자리에서 10분 이상을 계속 구르고, 뒤집기 하고, 이불을 헤집어놨다. 하지만 저질체력, 인내심도 그리 길지 않은 나는 50분 간의 실랑이에 인내심에 한계가 점점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00아, 너 왜 그래. 도대체 언제 자려고 그래~!(빼액~)"


 나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와의 잠자리 사투에...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고야 만 것이다. 아이는 큰 소리를 듣고, 이내 잠이 들었다. 


 10시 30분. 아이는 나와 1시간 실랑이 끝에 잠이 들었다. 속이 상했다. 아이에게 결국 소리를 지른 나도 싫고, 왜 매번 잠자리에서 우리가 긴 실랑이를 해야 하는지도 속이 상했다. 


 '다른 집 아이들도 이렇게 잠자리에서 잠들기 어려워하는 걸까. 왜 유독 우리만 이렇게 힘들게 잠들어야 하는 건지.' 힘이 들었다.

   



"애 자니?"


 친정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평소라면 '네.'라는 답변으로 말았을 테지만... 지쳐 있었던 나는 엄마에게 징징대고 싶었는지... 아이가 잠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는 둥, 재울 때마다 너무 많은 힘이 든다는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내 친정 엄마는 잠시 통화가 가능하냐며 답장이 왔고, 솔직히 전화까지 할 에너지가 내게 없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영양이 부족해도 애가 못 잘 수가 있대."

"얼마 전에 철분 검사랑 몇 가지 검사했는데, 정상이라고 했어."

"병원 검사만 너무 믿지 마라. 일반적인 검사하는 거랑 살 붙는 거랑은 또 다른 얘기지." 

"......."

"00 이가 활동량이 좀 많니. 잘 먹여야 된다. 잘 못 먹어서, 못 잘 수도 있어. 이것저것 먹어야 할 텐데..."

"엄마, 뭘 또 이것저것 뭘 먹여. 튀김, 빵, 과자.. 막 가리지 말고 다 먹여?"  

"아니. 그런 뜻의 이것저것이 아니라... 메뉴를 다양하게 건강식으로다가..."

"휴... 애가 입이 짧은 걸 어떡해. 많이 먹으면 얘는 탈 나는 애야."

"그러니깐 00 이는 조금씩 자주 계속 먹여야 된다니깐."

"자주 먹이면, 결국 밥을 조금밖에 안 먹어."

"그건 그렇지. 근데 00이 몸무게는 정상이니? 미달 아니고?"

"정상이에요. 휴... 엄마 다음에 통화해."


 전화를 끊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당연한 거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난 엄마가 되었고, 친정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약하고 돌봄 받아야 하는 아이가 우리보다 먼저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친정엄마의 우선순위에 딸인 나보다 아이가 우위에 있다는 게 너무 당연했고, 너무 잘 알면서도... 오늘은 눈물이 났다. 

 사실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 힘이 없어도 전화를 걸었다. 걱정이 많은 엄마, 그 당신의 사랑 표현이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표현이 오늘은 가시가 되어 나를 더욱 아프게 찔렀다.


 무얼 기대한 건지... 엄마의 관심사는 온통 손주에게 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결론은 아이의 영양부족으로 인한 잠 부족이었다. 친정엄마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의 잠 없음의 문제 원인을 같이 찾고 해결해주고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다 안다. 알면서도 오늘은 엄마의 그런 말들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아이의 영양이 부족한 것도, 잠을 못 자는 것도 결국 내 탓이라고만 하는 것 같았다. '네가 참 힘들었겠다.' 이 한마디의 공감이면 난 충분했는데 말이다. 


 결국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엄마에게까지 화를 내고야 말았다. 엄마가 무슨 의도에서 하는 말인 걸 다 알면서도. 엄마의 사랑이 커서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사랑을 다 담아내기에는 나의 그릇은 역부족이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화를 분출해버렸다.


 오늘은 꽤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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