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기리니 May 03. 2021

- 그런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어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


 엄마들은 이야기한다. 내 몸이 열 개라면 좋겠다고. 정말 내가 엄마가 되고 육아를 해보니 몸이 열 개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아이는 9시 30분부터 4시까지 어린이집에 가 있지만... 그래서 난 하루에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다. 하지만 할 일들은 밀물처럼 끊임없이 밀려들고,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지나가 있다. 매일 쳇바퀴 돌듯 돌아오는 해야 할 일들이 내게는 정해져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또한 많다. 우선 해야 할 들은 빨래 세 번 돌리기(수건, 아이, 어른 빨래), 청소기 돌리기, 일주일에 두 번은 밀걸레질, 설거지, 아이 반찬, 어른 국 끓이기, 점심 먹기 등등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남편이 쉬는 날에는 이 일들이 반으로 줄어들기는 한다. 하지만 남편이 일을 하는 날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과 중요한 일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야만 나를 위한 시간 1-2시간을 겨우 뺄 수 있다.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그땐 먹고사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 꿈도 못 꿨지."

"엄마의 삶의 원동력은 너였어. 너만 보고 살았지."


 '엄마에게 난 그런 소중한 존재구나. 엄마의 삶이 참 안 됐다.'라는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엄마의 말들은 줄곧 내게 부담의 올가미가 되었다. 엄마의 심심한 삶이 내 탓인 것만 같았고 그래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날 엄마 삶의 목표와 최고의 가치로 여겨 달라 말한 적도, 원한 적도 없는데... 엄마는 왜 본인의 삶을 좀 더 쟁취적으로 살아내지 않았을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끝까지 가족과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전투적으로 살아줘서 고맙지만... 엄마의 삶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너 때문에 이렇게 살아.

너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었어.

너 때문에 포기했어.

너 때문에...


라는 말은 그런 핑계는 훗날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대고 싶지 않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나의 삶에 대해 물어볼 때 혹은 훗날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볼 때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삶의 목표가 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내 삶의 자존감이고, 아이만이 삶의 전부인 삶은 살지 말자 다짐했다. 

  5년 뒤, 10년 뒤... 아이 때문에... 육아하니라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도피처 삼아 도망가거나 울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삶을 살아내려면 몇 배나 힘이 든다. 그냥 육아만 하는 것도 너무나도 힘이던데... 육아도 잘 해내고, 내 삶도 잘 가꿔가는 삶은 얼마나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얼마나 더 인내해야 할까.   

   

 난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영어로 프리토킹 하기, 언젠가는 출간 작가가 되기, 수영 혹은 요가 같은 운동 하나 마스터하기, 경제 공부 꾸준히 하기, 엄마와 여행하기, 돈 벌기 등등... 남들이 들으면 그런 건 시간이 많았던 20대 때 이미 했어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사실 나의 20대 삶에 대한 후회와 미련 인지도 모르겠다. 난 20대 때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 능동적인 사람보다 수동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서 20대의 내 삶을 돌아보면 전반적으로 밋밋하고 싱거웠다. 맵고, 짜고, 뜨겁게 살 수 있었던 20대를 난 싱겁게 보냈다. 그렇다고 더 이상 후회만 하고 그냥 그렇게 또 보낼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고...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20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간은 더 없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더 늘었으며, 저 모든 것들을 하기에 신체적으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핑계만 늘어놓으며... 후회만 하며 흘려보내기는 더욱 싫다.  


 더 이상 내 삶에 후회가 없기 위해서. 자존감 있는 엄마로 살고 싶어서 아니 그 이전에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싱거웠던 내 삶에 소금, 고춧가루를 뿌려가며... 결국엔 짜고 눈물 나도록 뜨겁고 매워서 못 먹게 된다고 할지라도... 엄마 이전에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에게 너 때문에 라는 말보다 네 엄마인 나도 이런 것들을 해냈어.라는 말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 밤이 꽤 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