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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Aug 27. 2021

둘째 출산기

두 번째라 쉬울 줄 알았지.


 첫째는 예정일보다 5일 빨리 태어났기에 둘째도 그즈음 태어나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이 다 되어 가도 둘째는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정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마음이 다급해졌다. 뒤늦게서야 아파트 18층 계단을 오르락거리고, 아침저녁 걷기 등 열심을 내보았다. 

 

 예정일 하루 전, 정기검진 날이 되어도 아이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아기가 아주 잘 컸네요. 초음파상으로 3.5kg이네요. 보통 이런 경우 실제로는 3.5kg 보다 크던데..."

"헛... 3.5kg 이요?"

"경산모이시니 좀 더 기다려봐도 되는데, 힘드시면 유도분만 날 잡아드리고요. 어떻게 할까요?"

"월요일로 유도 잡아주세요."

"그래요. 혹시 주말에라도 배 아프면 바로 오세요."


 자연진통을 기다리자니 아이가 더 커질까 봐 두려웠다. 3.04kg의 첫아이를 낳으면서도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는데... 그보다 더 큰 아이를 잘 출산할 자신이 없었다. 주말에라도 자연진통이 걸려 아이가 나와주길 간곡히 바랐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주말은 고요히 지나갔다.

 



 예정된 유도분만 날! 아침밥을 간단히 먹고, 출산 가방을 챙겨 나왔다. 시어머니와 첫째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준비된 분만실로 안내를 받았다. 우릴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은 순차적으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나갔다. 첫 아이 출산 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굴욕 3종 세트(관장, 제모, 내진: 왜 굴욕인지 모르겠으나)를 경험하고, 본격적인 유도분만이 시작되었다. (유도분만이라 함은 옥시토신 성분의 약물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진통이 오도록 하는 방법이다.) 


 내진을 했더니 자궁경부는 2cm 열려 있었다. 


 '경산모는 진행이 빠르다던데...' 


 난 곧 몇 시간 후면 자궁문이 다 열리고(통상 자궁경부가 10cm 열렸을 때) 기다리던 둘째를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긴 여정이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촉진제는 시간대별로 소량씩 단계적으로 투입된다고 했다. 촉진제를 투입하고 누워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자궁문이 열리고, 진통이 걸리는데 더 도움이 된다 했다. 분만실 안을 걸어 다니고, 짐볼을 탔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기미는 없었다.


"산모님, 진통 느껴지는 건 어떠세요? 배가 아픈 증상이 있나요?"

"사르르 하긴 하는데.. 아주 미미해요. 허허"

"그래요. 조금씩 단계를 올릴게요."


 난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 안에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 촉진제 투여가 좀 더 올라가면 곧 진통이 올 거야.'


 촉진제를 투여한 지 5시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신호는 없었다. 서서히 내 몸도 지쳐갔다.


"산모님, 내진 좀 해 볼게요... 자궁경부는 2cm. 여전히 똑같아요. 배 통증은 좀 있으세요?"

"아니요. 딱히..."

"이제 마지막 투여 단계로 높일 거예요. 이번에도 진통 없으시면 오늘은 여기서 중단해야 해요."

"아 네."


 아침 10시에 시작된 유도분만은 5시가 다 되도록 기미가 없었다. 더 길어지면 아이도 산모도 지치기 때문에 진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오늘은 유도분만 실패였다. 결국 입원해서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유도 분만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새벽 5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6시에 유도분만이 시작된다. 전날 사두었던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이레야 오늘은 꼭 만나자. 엄마도 힘을 내볼게!'


 촉진제를 투여하고, 나는 짐볼 위에서 통통 몸을 열심히도 튕겨댔다. 이런 마음으로 산전에 열심히 운동 좀 해둘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3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몸을 튕겨대도 별다른 신호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실패하는 걸까? 그러면 수술로 아이를 낳아야 할까? 아니면 자연진통이 걸리기를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들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렇게 짐볼 위에서 몸을 튕기고 굴려대며 머릿속으로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아랫배가 기분 나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보, 나 배가 좀 다르게 아파."

"첫째 때랑 비슷한 진통이야?" 

"어. 비슷해. 진통이 시작된 것 같아."

"오늘 둘째를 만나볼 수 있겠네."


 유도분만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났을 무렵.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몰려오고,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통은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선생님, 저 진통이 세졌어요. 아래에 자꾸 힘이 들어가요."

"그래요? 내진 한번 해볼게요... 산모님, 4cm 열렸는데... 경산이라 빠르게 진행되시면 1-2시간 안에 낳으실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저 무통주사는 언제 맞아요?"

"진행이 빨리되면 안 맞고 낳으시는 것도 나으실 것 같은데."

"네? 저는 맞고 싶어요."


 첫째 출산 때는 집에서 진통을 다 참고 가서 진행이 빨리 됐다. 무통 주사를 맞을 겨를이 없었다. 생으로 진통을 온몸으로 겪고 낳았다. 그때 이후로 둘째 때는 꼭 무통주사를 맞겠다고 몇 번이나 되새겼다. 




"산모님, 지금 5cm 열렸고, 곧 마취과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무통 맞으실 수 있어요." 


 나의 바람대로 마취과 선생님이 곧 오셨고 블로그에서 산모들의 경험담을 숱하게 봐왔던 새우등 자세를 나도 취했다. 바늘이 들어갈 때, 살짝 뻐근했지만 참을만했다. 점점 거세게 몰려드는 진통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산모님, 내진 한번 더 해볼게요. 제가 힘주라고 할 때 힘주세요."

"네."

"힘주세요."

"으읏~! 앗!"

"힘주세요."

"으아악~! 앗!"

"한번 더!"

"으~아아악~"

"이제 자궁경부 다 열렸거든요! 곧 선생님 들어오시면 분만 시작할게요."


 담당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힘을 주었다. 그것은 간호사의 손과 나의 기합으로 자궁경부를 빨리 열리게 하는 일이라는 걸 이내 알 수 있었다. 아침 회진 때만 해도, 웃으며 기별 없냐고 물었던 담당의는 환복을 하고, 비장하고, 진지한 얼굴로 이내 분만실을 들어왔다.


"자! 산모님. 힘 잘 주고 이제 낳읍시다!" 

"네..."

"힘주세요."

"으아아아악~~~~~~~~~~~"

"한번 더! 자! 힘주세요."

"아아아아아아아악~~~~~~~~~~"

"거의 다 왔어요. 자~!"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이번에도 괴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살면서 이런 힘을 주기는 두 번째였다. 분만대에서 괴성을 지르며 생각했다. 


'고작 19개월 만에 이 어마 무시한 일을 까먹고... 미련하게도 난 다시 이 고통을 반복하고 있구나. 이 고통이 1분 1초라도 빨리 끝나기를!' 


"아이고, 아기가 크네. 3.66kg입니다. 아버님은 아이 탯줄 잘라주세요."

"...아 네."

"산모님, 젖 한번 물려 보실래요?"

"지금요? 네"


 세 번의 괴성 끝에 아이는 태어났고 눈도 제대로 못 뜨는 핏덩이를 마주했다. 첫째와는 또 다른 감격이 있었다. 첫째 때는 정말 처음 겪는 고통에 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당시 아이 또한 태변을 먹고 태어나 응급상황으로 바로 신생아실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로를 제대로 마주 할 힘도 여력도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완 달리 이번에는 남편이 직접 탯줄도 자르고, 난 아이에게 젖도 물려볼 수 있었다.

 

'반가워. 둘째야.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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