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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Feb 03. 2021

연년생 맘이 되다 2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보내는 중이다. 두 번 째라 잘 알기에 수월 할 줄 알았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호르몬에 완전히 지배당한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침대에 누워 인간이 나약한 동물인지 내가 르몬의 변화를 이겨낼 정도로 강하지 않은 것인지 생각하다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먹으면 더부룩하고, 속이 비면 울렁거리는 증상 몇 주째 겪으면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모든 냄새가 괴로워 집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던 첫째 때보단 많이 덜하지만... 난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인간이 된 마냥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후회복을 위해 매일 만보 걷기, 자기 계발의 명목으로 영어공부, 경제공부, 그림 그리기  등등을 하며 파이팅 넘치는 삶을 조금씩 실현 해 가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흐릿해졌다.


 워서 웹툰 보기, 때가 되면 밥 먹기, 속이 비면 간식거리 입속으로 넣어주기, 아이와 잠깐 놀기 등등. 입덧을 핑계 삼아 본능적인 것에 지극히 충실한 인간이 되어갔다. 덤으로 얻은 것은 5개월 간 매일 걷기로 다져놨던 다리 근육이 맥없이 빠져버린 것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 조차 힘든 몸뚱이였다.


 

 남편과 상의 끝에 입덧이 끝나면 친정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걸로 합의했다. 산 전후로 시어머님이 오셔서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몸조리는 다시 친정으로 내려와 몇 개월간 도움을 받는 것으로.


 합의는 했지만 사실  남편에게 못내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남들은 임산부인 내 입장에서 먼저 힘듦을 알아주고 고충을 헤아려주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정작 알아주지 못하는 서운함이었다. 아마도 임산부라 쓰고 본능에 지극히 충실한 무기력한 인간의 삶이라 읽는 이 생활을 청산하기가 두려웠다. 난 호르몬에도 완패당하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인데, 과연 돌 갓 지난 아이와 뱃속 아기를 동시에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두려움은 머리 한구석 똬리를 틀고 있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런데도 내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그 합의에 도달한 것은 한편으론 남편의 말을 꺾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끝까지 고집부리고, 나의 주 무기인(남편이 말하는) 눈물을 보였다면 남편은  끝끝내 내 의견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남편의 의견을 묵살하기엔... 남편 또한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남편 입장에선 이미 6개월이나 양보하고 기다려준 셈이었다. 원래 예정은 작년 9월에 올라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또 2년 전, 친정엄마가 혈액암으로 투병했을 때, 딸인 당신이 간병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먼저 장거리 부부 생활을 제안해 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결혼하고 제대로 같이 살아본 적이 손에 꼽히는데... 이번엔 아이까지 함께 떨어져 있으니, 나도 나지만 남편도 많이 힘들 거라는 생각이었다.




 첫째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일이 시급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두 돌은 지나고 보낼 생각이었지만 내게 둘째가 생긴 이상 어린이집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남들은 출산하자마자 대기를 걸어둔다는데... 어린이집 입소 전쟁의 실상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버렸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의 어린이집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퇴근에  자차를 이용하기에... 배부른 몸뚱이로 그것도 14개월밖에 안 된 아이와 함께 도보로 등 하원 하는 일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이미 3월 입소신청이 마감된 상태였고, 민간어린이집 두 곳은 다행히 자리가 아직 있다고 해서 입소신청을 걸어두고, 방문상담예약을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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