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사탕이 걸린 듯한 느낌,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증상이 며칠 전부터 계속되었다. 원체 소화기관이 약한 탓에... 이번에도 식도염 비슷한 거 겠거니 했다. 밥 먹은 직후 아이가 졸려하면 같이 누워 있는 버릇이 영향을 줬으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런 증세는 3일이 지나도 지속되었다. 어느 날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한 두 숟갈 먹었을 무렵 갑자기 밥 맛이 뚝 떨어졌다. 입과 위에서 니글거리는 증상이 밥을 쳐다보기도 싫게 만들었다. 느낌이 싸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달 생리할 시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시작되지 않았다. 출산 후 생리가 불규칙적이었던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상상도 못 할 그 예감의 증거들이 되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여보 약국 가서 소화제랑 임테기 좀 사와요."
"에이. 무슨 소리야. 아니지 않아?"
"나도 아니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래."
나의 지령을 받아 든 남편은 부랴부랴 약국에 가서 소화제와 임테기를 사 왔다.
쿵쾅쿵쾅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1초가 10분 같았다.
'긴가? 아닌가? 아니었으면... 제발....'
임테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 속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색한 임테기는 흰 바탕에 선명한 두 줄의 선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했다.
'헉!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그래. 오류 날 때도 종종 있다고 하니깐. 괜찮아. 아직 확실하지 않아.'
임테기가 오류이길 바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제 겨우 출산한 지 11개월 차였다. 둘째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은 무조건 아니었다. 한 명도 케어하기 힘든데, 내 무릎은 여전히 고장 나서 아픈데... 이 몸으로 다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곱절의 양육을 해야 된다니... 머리를 쥐어뜯고굴려봐도 계산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됐어?"
"여... 보, 아무래도 내일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응? 왜? 두줄이야?"
"으응... 근데, 확실하지 않으니... 내일 가보자."
"헉, 진짜?"
임테기 결과를 들은 남편 또한 멘붕에 빠진 모양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난 아이를 출산하고 친정에 내려와서 육아 도움을 받고 있었다. 남편과 장거리 가족이 되면서까지. 원래 계획 대로라면 아이돌이 지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육아를 도움받고 있어 몸은 너무도 편했지만, 개인적으로가족은 함께 붙어살아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돌 무렵이 되면 독박 육아도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둘째가 생길 수도 있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심란한 밤, 난 친한 친구들에게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축하해주었지만, 이내 염려의 말들을 쏟아냈다. 연년생 독박 육아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돌쟁이 아이와 임산부 그리고 출산과 연년생의 육아는 끝없는 힘듦의 연속이라고... 차라리 친정 근처로 이사를 오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도 얼마 전 출산을 경험하고 또 육아를 하고 있는 터라... 친구들의 염려와 조언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여보, 나 임신 맞다면... 돌 지나고 올라가기로 했던 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 장거리를 계속하고 싶다는 거지?"
"으응... 우선은... 독박으로 두 명 양육할 자신이 아직은 없어."
"여보가 많이 힘들겠지만, 좀 책임감 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난 이제 우리 가족 같이 살고 싶어. 둘째가 태어난다면 더더욱 다 같이 살고 싶은데..."
"여보가 장거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 아는데, 나도 같이 살고 싶지... 근데 정말 내 체력으론 도움 없이 둘을 키우는 건 힘들 것 같아."
"여보는 솔직히 가족들과 다 떨어져 지내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난 사실 이렇게 떨어져 사는 거 한계가 온 것 같아."
"여보 그럼 장거리가 많이 힘들면 친정 근처로 우리 이사 오는 건 어때?"
"우리 당장 2주 뒤에 이사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친정 근처로 이사오자고?"
"... 응"
"차라리 장거리를 더 해. 지금 여기로 이사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사실 2주뒤, 우리는 이사할 예정이었다. 연년생 독박 육아가 자신 없던 난 친정으로 이사를 제안했고, 남편은 거절했다.나도 당장 친정 근처로 이사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난 자신이 없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출산 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다급한 마음이었다.그날 밤 남편과 나는 좁혀지지 않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섰고,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잠을 설치다시피 했다. 진료 시간에 맞춰 병원을 방문했다. 진료에 앞서 마지막 생리일과 입덧과 비슷한 증상들을 상담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임신이 맞는 것 같다고, 초음파를 통해서 아이가 잘 착상했는지 확인해보자 했다.
"아이가 잘 착상했네요. 안전하게 자리 잡았어요. 6주 차세요."
"아... 네..."
"이번엔 심장소리 들어볼게요."
"쿵쿵 쿵쿵..."
세차게 뛰고 있는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잠시 꿈일 거라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있었다. '아... 역시'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남편도 진료실 너머로 들리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확실하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친정부모님께는 어떻게 알리지. 주변에는 어떻게 알릴까.'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친정엄마는 이따금씩 둘째는 조금 있다 가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엄마는 뭐라고 할까? 나처럼 당황하고, 걱정하는 마음뿐이겠지. 어제 남편과 마무리 짓지 못했던 대화들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