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 한 명이 물었다. 태어 날 아이가 아빠와 엄마 성격 중 누구를 닮았으면 좋겠는지를. 그때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남편이요! 를 외쳤다. 난 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에너지도 적은 내향인인데 남편은 어릴 적 활동적이다 못해 사고 꽤나 쳐서 부모님 속도 썩이고 적극적이고 에너지도 넘치는 외향인이다.(본인 말로 지금은 내향인이 되었다고 한다._mbti결과상으로) 모든 성격엔 장단점이 있다고 하지만 난 내 성격의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할 때 인간관계는 깊고 좁게라는 지론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직장 업무도 튀지 말고 중간만이라도 가자라는 생각으로 일하다 정말 튀지 못해서 일에 있어 낙오된 적이 많았다. 모두 지나고 보니 '같은 환경에서도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
내 아이만은 이런 후회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하는 마음이었다. 신께서 기도를 정말 잘 들어주셔서 내 바람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다.
"어어~~ 내려와. 위험해~~!! 조심해~~!!"
"엄마, 하라는 씩씩해. 괜찮아."
"그래. 그럼 조심해. 너 그러다 쿵! 떨어진다."
"엄마, 나 잘하지? 도와주지 마."
"도움 필요하면 꼭 얘기해. 하라 다치면 엄만 슬퍼."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다 보면 가슴 졸일 때가 많다.아이는 쫄보인 나와는 다르게 모험심도 강하고 겁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30개월의 신체적 능력에 훨씬 엇나가는 행동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헛발을 디뎠다간 아찔한 상황이 올 것만 같다. 성인인 내가 올라가도 오금이 저리는데... 이곳을 겨우 생후 30개월 차인 네가 올라간다고? 하며 혀를 끌끌 차기 수십 번이다.
엄마가 보기엔 무서운 미끄럼틀_혼자 올라간 아이
아이의 이런 기질은 나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14개월 때 처음 어린이집을 갔을 때 선생님은 실내 미끄럼틀을아이 혼자 거꾸로 탄다고 우려 섞인 표현을 자주 내비쳤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는 시어머니가 오셔서 첫째를 돌보아주셨다. 그때 어머니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연거푸 걱정하셨다.
아이는 하루에 세 번 놀이터를 가도 지치지 않은 강철 체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활동적인 놀이를 선호했고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으면 그 날밤 쉬이 잠들지 못했다.
아이는 겁쟁이인 나와 놀 때보다 아빠와 험하게(?)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18개월 즈음 아이는 혼자 그네를 풀 스윙으로 타거나 놀이터 높은 곳에 올라가 철봉 같은 곳에 매달려 허공에서 몸을 흔들대곤 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아이의 이런 신체적 능력과 모험적이고 주도적인 성격은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이는 10개월 때 첫걸음을 뗐고, 20개월 때 즈음부터 젓가락질, 옷도 스스로 입을 줄 알았다. 지금은 30개월인데 웬만한 것은 혼자 한다.더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스스로 하고 싶어 했다. 본인이 도움 요청을 하기 전에 누가 도와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모험심 강한 아이와 놀아주는 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겁쟁이인 나에겐 버거운 일이었지만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소극적인 날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난 꽤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성장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엄마가 신발을 신겨주고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엄마가 해 준 것인지, 엄마가 그런 류의 것들은 으레 해 줘서 그러려니 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나이대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도엄마는보통 본인 손으로 직접해주곤 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부모님의 말씀, 주변 어른들의 말을 따르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었다.
학창 시절에 염색하거나 남자 친구를 사귀는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을 따랐다. 친구관계까지 간섭하는 부모님께 너무나도 서운했지만 당시 일말의 반박이나 거역은 하지 못했다. 그 서운한 감정을 그저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난 순응적인 아이였다.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어른들, 또 친구들 모두 나를 착한 아이라 칭했다. 착하고 순응적인 아이 그게 내 정체성이었다.
상대방이 부탁하면 해 줄 수 없는 상황이어도 일단 수락했다. 그리고 꾸역꾸역 그 일을 해주기도 하고 결국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의 의견과 내 생각이 달라도 드러내지 못했다. 오히려 "맞다! 맞다."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고 수긍하듯 가만히 있기도 했다. 이게 내 소극적인 대인관계법이었다. 학창 시절까지는 선생님께도 인정받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두루원만 했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 나의 이런 성향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직장 내에서 파벌이 생겼는데 중립노선을 탔다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관계도, 일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놓쳐버린 기회들도 많았다. 당시 직장생활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업무도, 직장생활도 잘 못하는 낙오자가 되어있었다.
직장도 건강도 잃고 꿈도 놓쳐버렸을 때, 환경과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원망하다가종국에는 나를 탓하게 되었다. 내 잘못이라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내가 싫었다.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 같았다.
그 이후 좋아하는 것들도하고 쉬면서 조금씩 회복을 했다. 소극적이고 에너지 없는 나를 그대로의 나로서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의 일에 나를 탓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후회들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난 조금 더 능동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또한 능동적이고 삶에 있어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에너지 넘치고 모험심 강하고 자기 주도적인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힘에 부친다. 솔직히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많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나 때문에 아이 활동을 제한하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쫄보인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오늘도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바깥 놀이를 하자고 한다. 밖은 너무 더운데 말이다. 내 상식 선에서는 지금은 실내 놀이가 딱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