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다. 나를 기점으로 남편, 둘째가 차례로 감기에 걸리더니 5일 차에 첫째가 마지막으로 감기에 걸렸다. 첫째는 낮에 진료 보고 약을 먹고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그날 밤, 열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았다. 38.5도를 웃돌더니 40도를 찍고 말았다.
남편도 나도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돌보니라 밤을 새웠다.우리또한감기를 앓고있었고, 5일간의 가정보육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다음날 아침, 하라의 열은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정밀 검사와 수액치료를 해줄 수 있는 2차 병원을 찾았다. 하라는 그날 수액을 맞고 돌아와다음 날 열이 떨어졌다. 하지만 혹시몰라 우리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않고 하루만 더 가정보육을 하기로 했다.
4일간 함께 고군분투했던 든든한 아군이자 동지인 남편은 출근을 해야 했다. 둘째도 감기지만 열도 없고 상대적으로 컨디션도 좋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로했다. 이제 첫째 돌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라는 열은 떨어졌지만 컨디션이 나쁜지 짜증이 잦았고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어. 옷 안 입을 거야. 약 안먹을 거야 싫어. 이거 말고 다른 거.등등의 변덕을 부리며 평소에는 쓰지 않는 것들의 떼를 쓰고 자주 울곤 했다. 타협을 하고 달래기도 했다.모든 것들이 참을만했고 받아줄 수 있었다. 아이도 힘드니깐. 지금 아파서 더 그럴 테니깐.
문제는 둘째를 하원 시킨 뒤부터였다. 감기 보균자인 나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두통과 콧물 줄줄, 재채기를 해대며 어린아이 둘을 돌보는 건 평소보다 50배 아니 100배나 버거웠다.
"엄마 콧물~~ 나와요.~~ 으앙~~ 닦아주세요. 콜록콜록 기침 나와요. 으앙~"
첫째는 몸이 괴로워서 짜증내고, 떼쓰고, 계속 안아달라 울었다. 첫째가 울고 매달릴수록 엄마 껌딱지인 둘째 또한 언니에게 엄마를 빼앗기기 싫어 더 크게 울고 매달렸다. 난 악을 쓰고 우는 두 아이를 품 안에 안고... 정신도 체력도 멍해져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3살 2살 아이들에게 엄마도 힘들다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를 반복했다. 역시나아이들은엄마의 사정따위는 봐줄 생각이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정말 나도 아이들과 함께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1분마다 계속 코를 닦아달라며 울고 짜증을 내는 첫째에게 협박하기 시작했다.
"하라야, 네가 약 먹기 싫다고 했잖아. 약 안먹으면 콧물도 나는거야. 약을 먹어야 안 나오는 거야. 약 안 먹겠다고 떼쓸거면콧물 나온다고 짜증 내지 마."
"너 약 안 먹으면 네 주방놀이 장난감 동생 줄 거야. 앞으로 주방놀이 장난감 만지고 싶음 동생한테 물어보고 만져."
등등... 아이를 협박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감정이 쌓여있던 하라의 분노는 둘째에게 향했다.이나가 다가와 자신을 만졌다고 물어버리고... 또 잠시 뒤엔 자신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밀어버렸다.평소에도 하라가 혼자 놀고 있으면 이나가 서슴없이 다가와하라의 장난감들을 만지곤 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 하라는 곧잘 이나를 때리거나 미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사람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 나쁜 행동이다.'라고 훈육을 하곤 했는데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너 정말 왜 그러니? 몇 번을 말해! 동생 좀 때리지 마!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난 정색을 하고 아이에게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하라는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울고 있는 이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모든 게 버겁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내가 화를 낸 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잘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자기 전에 우유를 먹고 자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우유를 꺼내 컵에 따르고전자레인지에 데우려는데...
내 곁에 서 있던 하라와 이나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서로 자신을 안아 달라며 떼를 쓰고 울고 있었다. 이나가 먼저 안아달라는 모션을 취하자 하라도 이에 질세라 안아달라 요구했다.
"잠깐만 기다려줘. 엄마 우유 데우고 안아줄게."
를 연발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아이들은 서로 누가 크게 울고 떼쓰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울고 소리를 질렀다.
"너희 왜 그래~나보고 어쩌라고!!!"
제어되지 않는 감정들이 순간 폭발하듯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들, 나의 감정의 불순물들, 서로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 말들이...
내뱉는 순간, 알았다.
나 또 버럭하고 말았네.
감정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언제 떼썼냐는 듯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을 펑펑 쏟아졌다. 온종일 하라에게 한 협박의 말들, 아이들에게 화내고 버럭한 일들, 주체되지 않은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온종일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건지.
왜 난 늘 제자리걸음일까. 내 버거움, 내 감정, 내 화에 못 이겨... 제일 연약하고 만만한 대상의 아이들에게 터뜨릴까.
아이들은 당연하게 미숙한 아이들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고아직 자라 가는 과정에서 표현법을 잘 모를 뿐인데
그걸 내가 잘 가르쳐줘야 되는데... 매번 내 감정, 내 화를 주체 못 하고 아이들에게 쏟아내고야 마는 걸까. 그리고 끝내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건지.
화내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울고 반복하지만... 어리석게도 그 패턴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머리론 알고 있지만 그 상황에 닥치면 또 내 패턴대로 하고야 마는 구제불능 엄마인 나.
그만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난 화내는 엄마가 아니라 잘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본을 보이는 엄마가 되고 싶다.
결국은 나도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정작 어른인 나는 감정 컨트롤, 건강하게 내 감정 이야기하는 것을 이제껏 잘하지 못했다. 가장 편한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 을 다시 공부하고 노력해보자 다짐해본다. 아이들에게 있어 말로만 이론으로만 가르치고 알려주는 엄마가 아니라...나부터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보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