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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Jun 13. 2023

-TV 없이 육아하기

TV 없이 연년생 육아 1년

"에잇!"     


친정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와 보니... 남편은 외마디 짜증과 함께 거실의 TV를 치우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광경 의아해 남편에게 물었다.     


“갑자기 TV를 왜 치워요?”

“전부터 여보가 그토록 치우고 싶었던 거잖아요.”

“그러긴 했는데, 그게 오늘일 줄 몰랐지. 심지어 여보는 동의 안 했던 거고.”

“오늘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 치우려고요.”     






거실에 있던 TV를 치운 건 작년 이맘때, 1년 전 즈음이다.     


친정에서의 8개월의 긴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오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TV를 치우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남편에게 TV를 치우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에게 TV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남편은 TV 없애는 걸 반대했다. 남편은 미디어 시청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TV 틀어 놓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 중에 남편의 최애는  단연 TV였다. 그런 남편이 본인 손으로 TV 치우고 있었다.     


친정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그 날밤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첫째는 남편과 잘 놀다가 갑자기 생떼를 부리더니, 본인의 욕구를 적절히 달래주지 않자 갑자기 TV를 보여달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아이의 그칠 줄 모르는 떼부림에 남편은 화가 났는지 TV청산의 칼을 빼들었다.     






첫째가 15개월 즈음되었을 때, 아이에게 처음 TV를 보여주었다. 난 당시 둘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잠시 쉼이 필요 거나, 밥을 차릴 때 아이를 잠시 앉혀둘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번씩 아이에게 TV를 보여주곤 했다. 당시엔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 귀엽게 몸을 흔들 춤을 는 아이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당시 아이는 TV에 집착하지 않았다. 먼저 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TV를 꺼야 된다고 하면 순순히 껐다.   


아이가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난 지금까지도 TV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TV시청이 본격화된 건 친정에서 가정보육을 하면서부터였다. 둘째가 60일 즈음되었을 때, 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내려갔다. 그리고 친정에 얹혀살면서 8개월 간 가정보육을 했다. (친정에서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려 노력했지만, 아이는 끝끝내 부적응했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입이 유독 짧았다. 좀처럼 뭘 먹으려 들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낯선 음식은 뱉거나 먹기를 거부했다. 양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잘 먹는 둘째에 비해 첫째는 유독 먹을 것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는 빼빼 마른 아이를 보며 많이 속상해했고, 지난날의 어린 나와 잘 먹이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자꾸 소환해 냈다.


난 ‘배고프면 먹는다’라는 생각으로 한 두 끼 즈음은 굶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친정 부모님은 아니었다. 손녀가 굶는 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라서 쓰겠니, 어릴 때 어떻게 해서든 먹이는 게 제일 중요해'부터 시작해 '어릴 때 너를 잘 먹이지 못해서 지금도 체력이 약하다'는 등의 말로 심에 대해 늘 언급하였고 다시 그런 과오는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속죄와 다짐을 당신의 손녀에게 했다.     


할머니는 작전을 짰다.


'목표는 모로 가나 도로 가나 잘 먹기만 하면 된다.'


밥 먹기를 거부하는 아이를 TV 앞에 앉혔다.


아이가 좋아하는 콩순이나 노래 영상을 틀어주며 밥을 떠먹였다. TV 앞에서 아이는 찰떡 같이 잘 받아먹었다. 평소 한두 숟갈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는 TV 앞에선 한 그릇 뚝딱하기 십상이었다.      


친정엄마는 자신의 전략이 아이에게 귀신같이 맞아 들어가자 만족감을 느꼈다. 아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으레 TV를 보여 달라 요구했고, 어느덧 식사 때마다 TV 시청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놀이 수단,
원칙 없는 미디어는 독이 돼 버렸다     

 


원칙 없는 TV시청이 반복되자... 아이의 시도 때도 없는 TV시청을 요구했다. 밥을 먹을 때는 물론이고 아이가 떼를 쓰거나 심심할 때도 손쉬운 협상의 수단이 되었다.


나 또한 거절할 명분을 잃어갔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쉽게 리모컨을 꺼내 들었다. 

아이를 쉽게 달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고, 우리에게 쉼이 필요할 때 쉼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원칙 없이 보여주던 TV시청은 아이에게 독이 되었다. 당시 유튜브를 통해서 콘텐츠를 보여주었는데... 알고리즘에 의해 무분별하게 뜨는 무궁무진한 영상의 세계 아이는 빠져들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막 8개월 된 둘째는 시각적인 자극에 몹시 흥분했다. TV가 켜지면 TV 앞으로 기어가 스크린을 만지려고 했다. 아이를 다시 뒤로 끌어다 놓으면 울면서 앞으로 북북 기어가 티비장 위로 기를 쓰고 올라가길 반복했다.      


첫째는 TV시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었다. 둘째는 TV가 켜지면 흥분하며 화면 앞으로 기어갔다.


그 꼴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당시에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고, 또 친정에 얹혀사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내 숙청의 대상 1호는 TV였다.        

  





물론 미디어가 주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유아기에는 반드시  원칙이 필요하고, 부모가 건전하고 질 좋은 콘텐츠 선별해서 함께 시청하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유아기 때의 미디어 시청이 가진 장점보다 단점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우선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아이가 TV 시청할 때 나도 다른 무언가를 하게 된다. 일을 하거나,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거나 등등.


또  무수히 많은 콘텐츠 중에 건전하고 질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는 일은 TV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큰 노동이었다.


아이의 콘텐츠를 같이 시청하는 것 또한 나에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같이 시청하고 있으면 내가 이러려고 TV 보여주나 자괴감이 든다. 아이가 TV를 보면 그 시간에 난 다른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는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보면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애를 써서 재미나 놀이를 찾기보다 알아서 재밌게 해주는 TV가 훨씬 매력적이다.   

 

TV 시청을 제한하는 부모들의 주된 이유가 수동적인 놀이보다 능동적인 놀이를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바람이 있다는데, 나 또한 그랬다.


TV보다 더 즐거운 것들에 눈을 게 해주고 싶었다. 쉽지 않지만 아이와 충분한 교감을 더 쌓고 상호작용을  많이 하고 싶었다.      





물론 미디어 노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 미디어의 맛을 본 아이에게 단번에 끊어내기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을 미디어 시청의 날로 정했다.

그것도 30분씩 오전, 오후 두 번 태블릿을 이용해 보여준다.  

이 날도 아이가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TV 없는 육아 1년.

TV 없으면 서로가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제 TV를 먼저 찾지 않는다.


와 아이들은 함께 끊임없이 놀거리를 찾는다. 그중에 우리만의 놀이를 발견하고 확장시켜가기도 한다. 주변을 탐색하고 어떻게 하면 이걸로 놀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아이가 어느 순간 놀이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주도한다. "엄마! 오늘은 이 놀이하자"라고 외치는 날이 온다.      


책을 가까이한다. 우리 집 거실엔 TV 대신 책장이 있다. 만약 TV와 책장이 함께 있었다면 아이들은 책을 보기보다는 TV를 틀어 달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심심할 때 책을 읽어 달라한다.       


물론 엄마의 노동의 강도는 더 올라가고, 끊임없이 함께 생각하고 아이들과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지만 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하고 즐겁게 놀며 보내고 싶다. 더 나아가 아이들이 화면이 아닌 주변을 마음껏 탐색하고 느끼고 배워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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