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이상 사이
“엄마랑 이야기가 안 통해. 그만 이야기할래.”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오전 시간 대 엄마는 손녀들이 잘 등원했는지 궁금해서 연락을 한다.
“애들은 잘 등원했어?”
“응 엄마, 내가 방금 영상 하나 링크 보냈는데 봐봐.”
“무슨 영상?”
“짐이 가득한 집에 대한 건데... 매일 짐 치우느라 청소로 시간을 다 보내는 집에 대한 다큐야...”
“근데 너무 깔끔 떨어도 복 달아나... 그렇게 하지 마라. 하라 인형은 사줬어?”
엄마도 한 깔끔하는 성격이라 공감해 줄지 알았는데...
아차! 싶었다.
어제 엄마랑 나눴던 대화가 화근이었다.
며칠 전 뭐든지 다~있소 하는 곳에 아이들을 데려갔더니, 둘째는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산대까지 들고 갈 심산이었다. 가뜩이나 집에 있는 인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몰하고 있던 나는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인형 사러 온 거 아니야. 보관할 공간이 없어. 오늘 이 인형을 사면 집에 있는 인형들을 나눠주거나 버려야 해.’
첫째는 다음에 사겠다며 눈앞의 인형들을 포기했다. 하지만 둘째의 선택은 달랐다. 집에 있는 인형들을 포기하고 눈앞에 놓인 새 인형을 선택했다.
그 날밤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첫째가 불쑥
"엄마 사실 나도 인형 사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인형을 나눠주거나 버려야 한다고 해서 못 샀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랬구나. 하라도 갖고 싶었지만... 집에 있는 인형들이 많이 소중해서 꾹 참았구나. 엄마 생각엔 이미 집에 인형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어."라고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걸 용케도 참아낸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미안하기도 한 밤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으레 엄마와 통화하며 아이들과의 있었던 일을 실컷 떠들고 보니... 수화기 너머에 언짢은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역시나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너무 그렇게 조건부식으로 아이들한테 하지 말라는 둥,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욕구를 다 억누르게 된다는 둥... 엄마는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악영향을 이야기 한참 이야기했다.
어저께 엄마와의 통화에서 그런 일이 한차례 있었는데 난 또 그걸 새카맣게 잊어버리고서(왜 그랬을까.) 다음 날 엄마에게 청소타령을 한창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소하지 않으면 저렇게 살림지옥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집도 버려야 할 것들, 정리해야 할 것들 투성이라고 하소연하는 게... 어제 그 일이 마음에 남아 있는 엄마에겐 곱게 들렸을 리 없었다.
“맨날 버리면 어떻게 사니, 나도 버릴까 생각하다가도 나중에 필요할 때 막상 또 아쉬우니 두게 되더라.”
“엄마, 버리고 또 왜 살 생각을 해. 필요 없는 건 버리고 더 이상 안 사야지..(중략).. 육아에, 살림에 일에... 나 매일 청소하는 게 너무 힘에 부쳐.”
“그러니 너무 깔끔 떨지 말고 대충, 적당히 하고 살아. 너희가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결되지.”
마지막 말이 순간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평소 엄마는 내가 사는 집에 대해 못마땅했다. 아니 염려가 많았다. 자가가 아닌 집, 작은 평수.
‘애들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이사를 가야 할 텐데...’‘요즘 애들도 집이 자가니 어디 사느니. 다 안다더라.’
엄마의 염려(바람)가 이번에도 위로를 빙자한 말로 툭 튀어나왔을 때... 그 말들이 불쏘시개가 되어서 나를 터뜨렸다.
“엄마, 그 얘기가 아니잖아. 큰 집으로 이사만 가면 뭐 해. 큰 집으로 가도 안 치우고 살면 결국 똑같아.”
작은 집, 자가가 아닌 집에서 복닥복닥 네 식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엄마에겐 걱정이자 근심거리이자 당신이 죽기 전 해결해야 하는 마음속의 숙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안 불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 할까. 지금 자금사정으로 매매는 할 수 있을까. 언제 즈음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릴 때 집 때문에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행여 친구들이 ‘너희 집 놀러 가도 돼?' 물어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얼굴이 붉어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의 그 경험과 정서가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두렵기도 하다.
결론이 나지 않은 물음에 확답 없이... 나 또한 현실의 흐름에 역행도 해 보았다가 열심히 순응하며 헤엄도 쳐보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불안감을 엄마가 건드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으로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가진 것이 없어서 괴롭고, 더 갖고 싶어 열심히 사는 일. 소유한 것들의 개수를 늘려가고 그 크기를 넓혀갈 때 진정 그것이 우리가 혹은 아이들이 원하는 행복도를 높이는 일인 것일까.
손에 잡히지 않는 소유를 위해 지금 가진 것들의 대한 감사가 없고, 때로는 가진 물건들이 많아 버겁기만 한 것들. 버거운 것들을 유지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욕망하는 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난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삶에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가볍게 살 순 없을까.
난 에너지가 작은 사람이다. 현재 육아, 집안일, 일도 하고 있다. 남편이 함께하지만, 육아나 집안일에 있어서는 시간적으로나 할당량 부분에서 내 몫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 굉장히 이상적이라 이 모든 걸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산 꼭대기에서 발버둥을 쳐도 딸 수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매일 열심히 살아가지만 내 체력은 쉬이 바닥났고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매일 쓸고 닦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정리를 해도... 만족감이 없었다. 일을 다녀온 후 하원한 아이들을 맞이하고 또 함께 놀고 밥 먹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정서까지 돌보다 보면 에너지가 탈탈 소진되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건 다반사였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죄책감과 함께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나를 보며 하루는 힘들어서,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고 또 다른 날은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눈물을 흘리는 날도 더러 있었다.
청소든 육아든 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데... 여전히 모든 걸 끙끙 짊어지고 내려놓질 못했다. 결국은 아이들에게 성질을 내거나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그래 좀 간편하게 살자!
좀 내려놓자!
계획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모든 걸 다 내 뜻대로 하려는 무거움을 내려놓자.
되뇌지만 생각처럼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오늘도 내심 많이 섭섭해하는 첫째를 달래주러 다 있소에서 인형 하나를 데려왔다. 덕분에 첫째의 얼굴에서 연신 웃음이 피어난다.
내 마음과는 다른 현실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상을 붙들고 내려놓지도 들고 있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
그래 너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