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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Jun 02. 2023

엄마, 우리 때문에 힘든가요??

힘들긴 해도 너희 때문은 아니야. 너희 덕분에 힘이 나.

OO야, 너와 지구의 말이 정말 많이 늘었어. 동요를 외워서(아직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니 반복해서 듣고 외우는 모양) 부르기도 하고. 입버릇이랄까 자주 쓰는 말도 하나둘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우리 때문에 힘든가요?'란다.


언제 그 말을 하냐면, 엄마가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할 때야. 너희가 양쪽에서 계속 질문해 오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집안일이 마구 몰려오거나하면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하려고 호흡을 고르거든. 그때 네가 옆에 있으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 우리 때문에 힘드냐고.


어떤 양육자들이 '너네 때문에 힘들어'라고 말하기도 한대. 하지만 엄마아빠는 그 말은 아이들에게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뭐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너희가 없었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심리적, 육체적 일이 많았을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건 너희를 낳기로 결정한 우리의 몫이야.


독립한 지 꽤 오래된 요즘도, 엄마아빠의 부모님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따금 '내가 너네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 아니'라고 말씀하시긴 해. 근데 자식으로서 그 말을 들으면 먹먹하고 답답해. '감사'하고 심지어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겸연쩍기도 하더라.


그래서 엄마아빠는 힘들다는 말을 너희 앞에서 자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더구나 그 원인이 너희라는 말은 (내 기억에) 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 때문에 힘드냐'라고 물으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지. 너희가 물어오면 '응, 지금 좀 힘드네. 하지만 너희 때문은 아니야.'라고 답하고 호흡을 고른 뒤 다시 하나둘 풀어나간단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에 말이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정말 에너지가 바닥났어. 주말 내내 너희와 놀고 너희를 돌보며 잠시도 조용히 있거나 쉬지 못했더니 정말 힘들더라고. 넋 놓고 멍~하니 있는데 네가 물었어.

“엄마, 괜찮아요?”


그리고 잠시 엄마의 표정을 살피더니,

"엄마, 그냥 힘든 게 아닌 것 같아요. (조용히 들여다보며) 엄마... 좌절했어요?"라고 묻더라.


네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어. 그냥 힘든 게 아니란 걸. 이렇게 기운이 없는데 당장 저녁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그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맞아. 좌절스럽더라.

누군가는 이 상황을 시지프스라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로 비유하기도 해. 당장 그날의 육아가 문제가 아니었지. 스스로도 잘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우연인지 모르지만 네가 정확히 표현해 준 거야.


이 좌절스러운 마음은 실제인데, 너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고. 참 곤란하고 막막했어. 어떻게 이 좌절을 겪어낼 수 있을까? 늘 그랬듯이 아빠와 서로 돕고, 주변의 또 다른 어른들에게 도움을 받고, 엄마 자신을 돌봐야겠지. 더불어 답은 너희 안에 있었어.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는 너희들의 순간


너희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올망졸망 율동을 하고, 너희끼리 돕고, 서툰 말로 서로의 마음을 물어가며 지내는 걸 곁에서 보면 정말 살아 숨 쉬는 기쁨을 느껴.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게 이 좌절을 견뎌낼 가장 강력한 에너지인 것 같아. 고단한 일상이 계속되지만, 벅찬 감동도 계속되니까.


그 순간들을 당연하게 여겨 지긋지긋한 고단함만 남지 않게, 깨어있을게. 그리고 얼마나 너희가 놀랍고 따뜻한지 자주 표현할게. 그럼 언제쯤 너는 물어오겠지.


"엄마, 우리 덕분에 힘나나요? 감동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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