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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일답게 삶을 삶답게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

by 최길효
역삼


직장인의 메카, 역삼역. 12시가 되기 전부터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러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 속에서 나는 직장인도 아닌 것이 또 학생도 아닌 사람처럼 우두커니 책을 읽으며 앉아있었다. "어디야"라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지하철 역을 올라가면서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은 건 기분 탓일까.


1년 만에 만난 친구 J와는 같은 회사를 다니던 사이였다. 지금은 둘 다 이직해 나는 (준)노마드로, 친구는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것은 생일 인사로 연락이 닿기도 했고, J의 임신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회사가 많이 배려해줘서 단축 근무를 하고 있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를 어떻게 써야겠다는 J의 얘기를 들으며 현실이 만만치 않음을 다시 한번 떠올리다 자연스레 리모트 워크 얘기가 나왔다.


'리모트워크 하는 회사는 어디서 찾아?' 아. 낯설구나. 나는 리모트 워킹을 하고, 소식을 접하고 들으니 요즘 더 많은 팀이 리모트워크를 시작하고, 기존에 그런 팀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지 여전히 자율근무, 리모트워킹은 낯설고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모르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상기했다.


다음 날, 사무실에 가니 책상 위에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 책이 도착해있었다.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

작년 여름, 그러니까 회사에서 출퇴근이 없어지고, 그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 글이 소위 말해 대박터진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플링크의 리모트워크에 대해서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유를 써서 어디든 가서 뭐라도 해야해'라는 의욕이 넘치던 때라 지금 읽으면 내용이 낯부끄럽긴 하지만, 내 나름대로 리모트워킹에 대한 생각과 장점을 풀어놓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리고 이 책에는 플링크 말고도 국내외 25개 기업의 리모트워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고, 직장인은 일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직장인으로서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내정치'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좋은 걸 좋다고 아니면 안 좋은 것은 좋지 않다고 눈치보며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만 생각해도 우리는 회사에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리모트워크는 진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업무 방식이다. 주변에 리모트워크를 한다고 얘기하면 '출퇴근이 없는 것',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 것'을 가장 부러워한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위한 업무와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에게 일로 다가오는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부러운 것이다. 기업은 리모트워크를 통해 직원들이 성과와 관련된 일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주고, 직원은 핵심업무 외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적은 인력으로 빠른 성장이 필요한 스타트업에서 리모트워크를 시도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리모트워크 도입으로 유명해진 곳은 온라인 그룹스터디 플랫폼 스터디파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 일하는 환경을 자유롭게 했다는 점은 왜 많은 스타트업이 리모트워크를 도입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곳. 거기가 모든 스타트업이 경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다양한 스타트업의 사례가 등장한다. 이메일 마케팅 서비스 스티비로 알려진 슬로워크,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 최근 정유미를 모델로 기용해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이리얼트립까지 완전 초기라고 볼 수 없는 스타트업에서도 리모트워크를 시행 중이다. 또한 리모트워크의 기반을 제주도에 두고 일하는 기업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최근 제주에는 리모트워크가 가능한 기업과 프리랜서들이 찾아와 도시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것 또한 리모트워크의 장점이다.


리모트워킹 6개월 차

다시 J와의 대화.

J : 그럼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
M : 음... 눈 뜨자마자 일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카페로 이동해서 일하다가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오늘처럼 낮에 약속이 있으면 밤까지 일하기도 하고.

6개월 차 리모트워커. 음 아직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놀랍긴 하지만 매우 루틴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이제 보통 회사는 못 다니겠네'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다닌다. 어차피 나도 일하는 직장인이고 내 삶도 매우 루틴하기 때문이다. 좋아보이는 일이든 아니든 사람은 모든 환경에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적응하고 나면 모든 일에 익숙해진다. 처음 리모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적응기간이 있었다. 어디로 떠나야만 하나라는 강박도 있었고, 일하는 모습을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나라는 압박감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곳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5년 후의 리모트워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5년 후만 되면 더 많은 기업이 리모트워크를 도입하지 않을까. 헌 데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에 소개된 다양한 기업의 리모트워크 사례를 보면서 리모트워크가 9 TO 6, 10 TO 7처럼 더 빨리 일상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성과 효율성, 시스템이 아닌 몰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것(창의성이라고만 하기는 좀 그런 것들...?)이 앞으로 기업에 필요할테니까. 그런 측면에서 한 발 빨리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은 기업에게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을 추천하고 싶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책에는 리모트워크에 필요한 협업 툴, 해결해야 할 법적 이슈 등이 함께 소개되어 있어 실전 리모트워크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새로움, 변화를 시작하고 싶다면 한번 시도해보시라.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굳어있어 도태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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