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그래서 회사가 굴러가

by 최길효

수동적 노마드가 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알음알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회사 출퇴근 제도를 얘기하면 보이는 반응이 비슷하다. 아마도 그 반응들이 원격근무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이 아닐까 생각되어 한번 대화를 각색해봤다.


"여, 오랜만"
"하이!"
"잘 살았음?"
"ㅇㅇ, 우리회사 출퇴근 없어짐!”
"헐!"
( A )


문제. 여기서 A에 들어갈 문장은 무엇일까요?

보기 1. 와 존X 부럽다. (유사 답변. 개쩐다)

보통 수직적인 구조의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보이는 반응이다. 칼 같이 출근하고, 밥 먹듯이 야근하며 회식이라 쓰고 번개라 읽는 고리타분하고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부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격 근무제도를 도입하고 나서는 일하고 싶을 때, 출근해서 일하고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들의 소원이자 열망을 매일같이 실현하는 사람이 나다. 그러니 존X 부럽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잔이나 같이 한번 부딪쳐줄 뿐


보기 2. 그래서 회사가 굴러가?

굴러간다. 회사가 망하지 않을지 걱정해준다. 사실 내가 일하는 것은 원격근무 전이나 후가 별로 다르지 않다.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몰라도 알아서 자기 일을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사무실에 오든 안 오든 모두 각자 주어진 일을 한다. Jira를 활용한 업무처리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Task 카드가 움직이는 것만 봐도 '이 일을 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기 3. 대표가 미쳤네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라는 피드백도 자주 듣는다. 뭔 배짱으로 직원들을 방목한 거냐며, 보통 스타트업 대표는 자기 개인시간 없이 일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맞는 소리다. 아직 궤도에 올라오지 못한 스타트업 대표는 개인 시간 없이 일한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경영진의 일과 직원의 일은 별개다. 회사는 직원 개개인이 성장하며 오래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원격근무와 (직무와 관련된) 자기계발을 업무성과로 인정해주는 SIR(Self Improvement Report) 제도도 운영 중이다. 어떻게 보면 미친 것 같긴 하다. 어감은 좀 다르지만.


보기 4. 어디 안 가?

원격근무 얘기만 하면 날 내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를 써먹지 않고 서울에 짱 박혀 있는 게 안타깝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라도 갈 예정이다. 다만 짧은 여행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알아볼게 많기도 하고 원격근무를 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 것들도 있어 좋은 시기를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돈이 있어야 간다.


보기 5. 일이랑 일상이랑 구분돼?

아니. 안된다. 출퇴근이 없어지면서 일과 일상의 구분이 사라지기는 했다. 다만 자율성은 있다는 점이 큰 차이다. 요즘은 일이 좀 있어 9시쯤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데 한 4~5시 정도까지 열나게 일하다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30분 정도 자고 일어나 8시쯤 집 앞 카페로 가서 10~11시 정도까지 남은 업무를 마무리한다. 30분 짧게 자긴 해도 꽤 효과적으로 휴식이 되나 보다. 그냥 밥 먹고 집에서 멍 때리다 자는 것보다는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소진되는 느낌은 덜하다.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 안 하나'하면 의욕이 뚝 떨어지는 경험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자율적으로 하다 보니 소진이 덜 되나 보다.


회사는 일을 해야 돈을 벌고, 직장인도 일을해야 월급을 받는다. 일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사무실로 나와 정해진 시간을 앉아있는 시간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래서 누구는 일을 잘하고, 누구는 일을 못한다. 받는 성과급도 다르고 회사로부터 얻어가는 것도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할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일하고 일 안할 사람은 바로 옆에 팀장님이 앉아있어도 일을 안한다. 결국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신기하고 궁금하고 걱정될 수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걱정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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