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빠르게 집중해서 일하기
가방과 옷을 풀어두고 자리에 앉는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 패딩을 꺼냈는데, 아직 겨울은 아닌지 이마에 땀이 맺힌다. 노트북이 켜지는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튼다. 오늘의 음악은 E-SENS의 MTLA. 느린 박자와 생각이 많아지는 랩을 듣고 있다보면 주변 소음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한 모금 깊게 마시자 커피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보자.
뭐 살짝 허세스럽긴해도 요즘 내 일상이다. 가방 하나 들쳐매고 여기저기 카페를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꼴이 딱, 보부상스럽기도 하다. 내 역마살은 관악구 봉천동 한정으로 매우 심각하다. 사무실 - 카페 - 집, 크게는 세 곳을 돌아다니며 일한다. 카페라는 공간이 자주 변하긴 하지만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건,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처음은 장소와 환경이었다. 와이파이야 어디나 있다더라도, 콘센트, 의자, 적당한 소음과 조명 등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았었지만 이제는 '이 또한 내 마음가짐이구나'라는 원효대사급 깨달음을 얻었다.
초딩이 뛰어다니고, 동네 아주머님들이 수다를 벌이고, 차가 바로 옆을 지나다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냐고? 할 수 있다. 오늘도 했는 걸. 이어폰을 끼면 적당히 방음이 잘 되더라. 그래도 준비, 땅! 하고 신호를 끊어줄 노래 하나는 필요하더라. 요즘은 조용한 공간 대신 일하기 위한 계획을 미리 짜는 편이다. 이게 잘 되지 않으면 딱 허송세월하기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원래는 자기 전에 다음 날에 뭘할지 생각하고 잔다. 그럼 아침에 딱, 자리에 앉으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나만 그런가했었는데, 나처럼 일하는 친구처럼 일하는 친구의 친구가 자기도 자기 전에 생각 다 해두고 잔다는 얘길했다. 그 대화의 주제는 왜 우리는 일을 빨리하는가였다.
계획을 잘 했다면, 어디서든 앉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무실일 수도 있고, 카페일수도 있고, 피아노 연습실 책상 위일수도 있고, 지하철 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일수도 있다. 단순 리스트업까지를 계획이라 치면, 프로세스는 하나의 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단계다. 두서없이 프로세스를 생각하는 편이지만, 대부분은 일의 개요를 만들고, 충분할지 검토하고, 제작 또는 실행한 뒤, 기분에 따라 기록한다. 기록이 실력을 키운다고하는데 기분에 따라 기록하지 말고, 기록할 기운까지 생각하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여기서 중요한건 쉐도우 복싱하듯이 일을 머리속으로 한번 해보는것이다. 그 때, 모르는 것이나 부족한 것 없이 진행이 되면 대부분의 일은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다. 프로세스를 잘 기억해두고 다음 날 따라만 하면 되니 시간이 오래 걸릴것도 없다. 만약, 잘 안된다면 내가 모르는 것이거나, 놓친 것이 있거나,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도움을 구하자.
내가 장소를 옮겨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단시간에 집중하는 연습의 필요성을 늘 느낀다. 그래서 최근 연습하고 있는 것은 '150분 집중'이다. 팀 페리스 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추천하는 성과를 내며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다. 저자는 2~3시간의 시간에 온전히 몰입해 하루에 1개의 결과물만 만들어내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https://tumblbug.com/minee 에서 150분 타이머를 봤지만 사자니 좀 비싼 감이 있어 그냥 대충 2시간 단위로 집중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이 글도, 150분 집중의 결과물이다. 많은 글을 쓰고 싶은데 왜 쓰지 못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150분 집중'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일에서도 '150분 집중'을 연습하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몇 년간 일을 해보며 느낀건, 일이란게 오래 잡고 있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더라. 그래서 나는 만약 내가 하나의 일에 150분 이상의 시간을 사용했다면, 결과물이 어떻든 간에 잘못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잘못은 내가 그 일에 대해 충분히 모르고 있거나, 업무 분화를 잘못했거나, 집착하고 있는 것, 이렇게 3가지 종류의 잘못이다. 참... 생각은 이렇게 하고 있어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최근까지도 그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Zendesk HelpCenter를 구축하는 단계에서 코드를 활용해 Customize 해볼 작정이었는데, 찾아서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막막해 이 일의 진척도가 매우 낮았다. 그래도 Cloning / Finding / Custom으로 분화해 접근하다보니 뭘 해야될지가 보였고, 도움을 얻어 목표하는 수준까지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일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괜찮다. 왜냐하면 관찰하고 빠르게 수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일하는 분야는 빠른 실행과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TL 분야와 비교하자면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뭐 어찌보면 이것도 린(LEAN)이라는 개념 아닐까? 다만 그 대상이 회사가 아니라 나(사람)일 뿐.
김이나 작사가는 작사가로 일하던 초기, '빠른 작사, 김이나'가 업무 방침이었다고 한다. 빠른 속도을 어필한 것도 있었겠지만, 다작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생각은 끊어지지 않고 쭈우우욱 가야한다. 하나의 호흡으로 생각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비록 나는 아직 한 호흡에 2시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뭐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훈련하고 연습할 생각이다. 그리고 긴 호흡이 내게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있다. 장편 소설가라면 몰라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해야하는) 모습에 가까우니 150분 정도가 내게 딱 적당한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제발, 부디, 정말, 꾸준히 할 수 있기를...! 새해는 아직 멀었지만 이 글을 통해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