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동네

봉천동 노마드

by 최길효

어릴적, 나는 멀미가 심했다. 버스를 타면 물론이거니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고역은 귀성길이었다. 명절에는 빼도박도 못하고 시골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언제 풀릴지 모르는 정체와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는 그야말로 극혐. 가까스로 고속도로를 지나고 차를 세울 수 있는 바닷가에 도착하면 두세번은 차에서 내려 토하기 일쑤였다. 으. 그 참을 수 없는 불안함과 불편함. 멀미에 가장 좋은 약은 잠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도 차만타면 잔다.


20살,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배탈이 자주 난다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마셔댄 술 때문인지, 자취생이라 시켜먹은 배달음식 때문인지 갑자기 배탈이 나는 일이 잦아졌다.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갑자기 집에 가거나, 지하철에서도 자주 내렸다. 이 때부터 지하철만 탔다. 그리고 약속시간보다는 언제나 먼저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나 늦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요즘에는 가방에 늘 약을 챙겨 다닌다.


불안함. 나는 늘 이동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지낸다. 그래서 야외보단 실내를, 바깥보단 집을, 여행보단 동네가 좋다. 지난 5월부터 나는 원격근무를 한다. 사실 '하고 있다', '하는 중이다', '일한다' 등 어떤 말을 뒤에 붙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원격근무가 익숙하진 않다. 다만 최대한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시간을 써서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행, 이동, 떠남과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내가 원격근무라니. 디지털노마드라니.


처음에는 다양한 곳,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려 나름대로 노력했다. 음. 근데 불편했다. 아니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여행의 참맛을 모르는데 뭐가 남겠는가. 남들이 가니까 따라한거지. 결국 집 주변 봉천동을 배회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한다고 나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


봉천동 노마드. 동네형 노마드로 일하는 건,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짓이다. 기껏 병뚜껑을 열어줬더니 병뚜껑 높이 밖에 뛰어오르지 못하는 벼룩같달까. 허나 다행히도 벼룩의 세상은 작은 병이 전부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넓게 보지 않으면 깊게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6개월 남짓된 변화 속에서 나는 내가 가야할 방향성을 어느정도 정했다. 우리 동네, 단골 손님, 내가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보여주기엔 넓지 않아도 내가 느끼기엔 다양하고 충분한 우리 동네와 사람들에 대해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노마드로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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