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출근 안 하셔도 돼요
5월 14일. 로즈데이에 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100%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사람 말이다. 우리는 사무실 출근도 가능했지만 강제가 아니었기에 디지털 노마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부분 원격근무나 유연근무제는 들어봤지만 디지털 노마드는 생소했다.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지, 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변화는 늘 급작스럽다. 오른다 오른다하던 지하철 요금이 이번 달부터 오르거나,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 등처럼 말이다.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시작!' 외치는 순간에 변화는 찾아온다. 정한 사람이 내가 아닌 이상 모든 변화는 새롭기만 하다. 이미 회사는 3시간 정도의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운동이나 저녁 약속을 정할 때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었다. 충분한 잠이 필요한 나로써는 더욱 유동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 더 컨디션을 조절하기는 좋았다. 보통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건 점심밥도 포기해야 하고 눈치도 보인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운동하기는 짬(?)이 좀 차야 할 수 있다. 그걸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한다면 시간에 상관없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은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 5일, 40시간을 일한다. 법에 정해져있다. 법적으로는 화장실도 안가고 숨도 안쉬고 일하는 사람이나, 점심시간, 티타임, 담배타임 등 섞어가며 일하는 사람이나 똑같다. 하지만 둘 다 문제는 있다. 숨도 안쉬고 일하면 오래 일할 수 없다. 전력질주는 지치는 때가 분명히 온다.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면 일이 안된다. 결국 조화의 문제다. 회사는 업무 중심으로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필요한 아웃풋을 자율적인 인풋으로 뽑아내는 것. 즉, 이를 통해 개개인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일을 업무 중심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룰이 필요했다.
1. Jira를 통한 업무 프로세스 관리
Jira는 폐쇄적인 칸반 툴이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사전에 설정하면 구성원들은 그 프로세스에 따라서만 태스크를 이동시킬 수 있다. 자유도는 낮지만 관리 측면에서 용이한 서비스다. 관리에는 위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에픽 > 스토리 > 태스크 > 서브 태스크라는 위계구조로 업무를 쪼갠다. 에픽은 장기적이고 큰 단위의 일. 스토리는 에픽을 달성하기 위한 업무. 태스크는 실무자의 업무. 서브 태스크는 태스크 수행에 필요한 세부사항이다. 서브태스크부터 하나씩 채우면 에픽을 달성할 수 있는 프로세스다.
2. 업무 중심의 평가
프로세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평가가 중요하다. 원칙적으로는 '업무를 완수하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사장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거나, 부장님과의 술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평가 기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보다는 잘, 눈치보다는 실속을 중요시하는 평가 제도다.
3. 주 1회 오프라인 미팅
그래도 만나야한다. 프리랜서와 직장인 디지털노마드의 차이는 소속되어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보고, 회의도 해야하기 때문에 매주 목요일마다 사무실에서 모인다. 물론 이 모임 때문에 휴가, 노마딩 등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4. 커뮤니케이션은 책임감을 갖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자유를 부여하지만 협업이 필요한 순간에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일하는 중이라면 일하는 중이라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
낯선 시작. 우리에게 출퇴근은 너무 당연하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출근하고, 월급날이면 한손엔 치킨을 사들고 돌아오는. 1997년, IMF 전 금리가 10%가 넘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했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출퇴근이 사라진 회사를 다닌다. 어떻게 해야할까. '오전에는 영어공부와 운동을 하고, 오후에 출근해서 일할까" 혹은 '혼자 집에서 일하면 게을러질까' 등 여러 생각이 있었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를건 없다. 눈뜨면 일하고, 하기로 한 일 다하면 쉬고.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는 덜해 저녁시간을 꾸준히 생산적으로 보낸다. 사람은 어떻게 환경이 변해도 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적응한다. 나 역시 변화를 내게 맞게 적용시켰다.
노마드가 되고나서는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가나 환경 등을 생각했을 때 서울은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서울이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일자리가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서울 사람이 되어버린거다. 만약 노마드가 보편화된다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일할 수 있을까. 유토피아 같은 상상이지만 문득 그런 날을 한번 그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