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형 노마드의 특권
우리 동네에는 커피를 기가 막히게 하는 카페가 있다. 요즘 트렌드와 달리 메뉴도 몇가지 없고, 데코레이션이 이쁘지도 않다. 심지어 디저트나 베이커리는 아예 메뉴에 없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맛있어라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단골 손님들도 많아 오며가며 낯이 익은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이 카페의 단골이다. 테이블이 낮은 것만 빼면 완벽히 내게 이상적인 카페다.
처음 들리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느날 출근하는 길에 있던 오래된 밥집이 문을 닫고 카페가 생겼다. 그레이 톤의 차분한 인테리어가 일하기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간 순간, 마음을 빼았겼다. 언젠가 내가 차리고 싶던 카페의 모습을 한 곳이었다. 큰 로스터기, 깔끔한 바와 테이블. 만약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이 카페의 사장이 되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갖고 싶은 카페였다. 내 상상보다 커피는 더 훌륭했다. 시큼한데 자극적이지 않고 고소한 맛. 깔끔한 맛의 커피였다. 그 때 정했다. 앞으로 밖에서 일할땐 여기서만 해야겠다고.
단골. 이 단어를 굳이 꺼낸 건 나 혼자 자주 가는 카페가 아니여서다. 음. 말을 풀어보자면 자주가고, 사장님도 나를 알아봐주시기 때문에 단골 가게라고 이름 붙였다. 얼마되진 않았지만 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커피 품평이 시작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단골들보다 자주 가고 내가 커피도 좋아하는 걸 아셔서 그런지 사장님이 커피 맛에 대해 많이 물어보신다. 저번에 마신 것과 다른지, 오늘 원두가 바뀌었는데 맛은 어떤지, 바닐라 라떼 당도는 적절한지 등 내가 커피에 가진 관심에 비해 지식은 부족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성실히 답변드린다. 텁텁하진 않아요. 너무 달지는 않아요. 원두는 바뀐 원두도 제 입맛에는 맞는 것 같아요. 이게 몇번 되다보니 신메뉴로까지 확대되었다. '사장님, 디저트 하실 계획은 없으세요.' '티라미수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테이블이 낮아서 어떻게 대접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요즘 유명한 티라미수 집은 컵에 담아서 주던데...' '아 그런 방법도 있군요.' 이제는 무슨 신메뉴 개발회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가장 웃겼던 것은 사장님이 휴업 통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실 때였다. 단골 카페의 사장님은 원두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가게를 열지 않으신다. '찾아주시는 분들이 기대하는 맛이 있는데 부족한 원두로 장사를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며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장인정신이다. 아무튼 겨울에 온도가 급격히 변하면서 원두 퀄리티가 떨어져 문을 닫을 고민을 하시던 자리에도 나는 앉아서 내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장님이 '제가 다음 주부터 영업을 안하면 단골 손님께서는 실망스러우시겠죠'라고 물어보시더라. 먼저 어떤 사연인지 들었다. 최근에 부품교체 때문에 영업을 쉬었었는데, 2주도 안되서 다시 문을 닫으면 신뢰관계가 깨질 것 같아 걱정이라시더라. '음. 아쉽지만 기다릴 수 있어요'라고 얘기한 뒤, 어떻게 문을 닫아야 할지 오랜시간 얘기를 나눴다. 그 후로 나는 사장님의 걱정인형이 되어 가게 한쪽에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소리를 듣는 손님이 되었다. 이렇게 동네 카페 사장님과 꾸준히 교류할 수 있다는건 동네형 노마드인 나의 특권이 아닐까. 쉽고 빠른 것만 좋아하는 세상에서 이렇게 진득하게 일하는 사람을, 꾸준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요즘 우리는 유명한 곳만 찾아다닌다. 소위 인싸들이 가는 곳이라면 줄을 서서라도 가서 먹고 온다. 우르르 우르르. 주말이면 모든 관광지가 붐빈다. 가오픈된 곳까지 찾는 걸 보면 이젠 어떻게 다들 찾아다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만큼 소외되는 곳이 있다면 동네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동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잠자는 시간을 빼면 사실 동네에서 보낼 시간도 없다. 애정이 쌓일리 만무하다. 어릴 적, 복덕방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동네라고 하면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특히 직장이 모여있는 빌딩가는 내겐 불편한 장소다. 잊었던 동네에 대한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도 자유롭게 일하는 생활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다. 올해는 한번 각자의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낼 수 있는 가게를 찾아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