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예술

보통사람의 예술

by 최길효

관악구민종합체육센터.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이 곳은 동네 어머님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다. 관악구민종합체육센터는 말 그대로 모든 문화가 다 모여있는 곳이다. 헬스, 수영 같은 기본적인 운동부터 줌바, 스피닝, 검도 심지어 발레까지. 우리동네 예체능의 허브와 다름없다. 내가 이런 체육센터를 다니게 된 계기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저렴한 수강료. 그리고 하나는 피아노. 아직 입구에 서있는 멸치 트럭과 1층 로비에서 도시락을 까드시는 어머님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내게 문화센터는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편과도 같았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한 것도 아마 5살 때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재도 아니었고, 힙합씬으로 진로를 잡은 것도 아니라 창모가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사가기 전까지 피아노를 배우면서 작은 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건반 소리는 내겐 언제나 매력적인 소리였다. 또렷한 음정과 울림은 머리 속이 복잡할 때 기분전환하기 최고였다. 60대에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방을 갖는 것,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친구 녀석이 그러려면 우선 집부터 사야겠네라고 얘기하는 순간 로망은 깨졌지만 그래도 언제나 배우고 싶은 목록 1순위는 피아노였다. 다행히 체육센터에도 피아노 강좌는 있었고, 나는 점심시간을 줄이는 대신 월수금 매일 1시간씩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눈과 발이 모두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오른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는 듯한 인지부조화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래도 임계점을 넘기고 나니 자연스러워져 그래도 이젠 쉬운 곡은 제법 능숙하게 친다. 하루 1시간이었지만 내게 피아노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는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줬다. 부분연습, 피드백, 수정 등 꽤나 고단한 시간을 투자했을 때 실력이 는다. 어려워야 기억에 남는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우리 피아노 수업은 분기마다 작은 연주회를 연다. 거창하진 않지만 수강생들끼리 모여 연습한 곡을 치고 다과타임을 갖는다. 음. 사실 얘기했던 것에 비해 수강생 분들이 연주한 곡은 거창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이 다 나왔으니 말이다. 아. 여기 온 우리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나는 보통사람들의 예술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주부, 어르신, 학생, 취업 준비생, 직장인 할 것 없이 동네에 모여 각자의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이 보기엔 낮에 하릴없이 시간 보내러 가는 줄 알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피아노를 친다.


예술은 뭘까. 예술가만 하는 것이 예술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에 예술은 꼭 필요하다. 배움에 대한 교훈을 얻거나, 집중하는 하는 시간을 가진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을 즐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직장인, 회사원은 예술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영화, 뮤지컬, 클래식 등을 가장 많이 즐기는 사람은 직장인이다. 하지만 수용하는 예술과 표현하는 예술에는 정의내릴 수 없는 큰 갭이 존재한다. 표현하는 예술에 있어서 직장인은 분명 취약계층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근로시간이라는 규율은 매우 비인간적인 제도다. 사람을 정해진 시간 동안 앉혀놓고, 정해진 일을 하게 하다니. 우리가 장래희망에 썻던 꿈들은 최소한 이렇게 따박따박 앉아서 기계처럼 일하는 모습을 상정해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유가 자연스러운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자유롭고 싶다. 점심시간을 30분 더 이용할 수만 있어도, 출근길 지하철을 타지만 않아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자율권만이라도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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