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라 목화씨

서울과 지방을 넘나들며 목화 키우기

by 기림
회사 정원에 솟아난 아기 돌단풍

올초. 그러니까 지난봄에 직장에서 목화씨와 접시꽃 씨앗을 받았다. 우리 직장에는 아담한 정원이 있는데 매달 말이면 인근 주민들이 모여 자원봉사로 정원 가꾸기를 해주신다. 그렇게 만난 자원봉사자 선생님 한 분이 정원에 심어보라 목화씨와 접시꽃 씨앗을 잔뜩 주고 가셨는데 그 양이 상당하여 나도 조금 받았다. 목화씨앗은 딱 10알 그리고 접시꽃 씨앗은 약 30알. 그렇게 설레는 씨앗 심기를 시작했다.


접시꽃은 꽃을 보려면 올 가을에 시작해야 내년 봄에 피는 걸 볼 수 있다고 하고. 목화는 딱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에 심어야 후에 옮겨심기 쉬울까를 고민하던 찰나 재활용을 위해 버려둔 달걀포장재가 눈에 보였다. 첫째로 한 알 한 알 심기 쉬어 보였고, 둘째로 후에 집으로 들고 내려가 화분에 옮겨심기는 더욱 쉬워 보였다. 속전속결로 상토를 사서 목화씨에게 집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물을 흠뻑 주었다.


4, 5월

며칠이나 지났을까. 첫 목화 새싹이 올라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차례 새싹이 다 올라왔다. 달걀판은 생각 이상으로 좋은 목화의 집이 되어주었다.


4월 중순. 약 10일간의 변화.

목화들이 충분히 커져서 집이 비좁아 보이게 된 순간 봉화에 있는 본가로 목화 옮기기 대작전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달걀판 뚜껑을 고이 닫아주고 비닐팩에 잘 닫은 채로 우선 출근했다.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은 정원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꺼내 주었다가 퇴근 후 다시 그대로 팩에 넣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빠르게 달렸다.

5월 초 마포에서 강북을 가로지른 목화들. 조금 힘겨워 보여 물을 잘 주었다.

저녁 8시에나 도착한 본가. 오랜 이동에 괴로워 보이는 목화들을 바로 꺼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다. 집에 굴러다니는 화분 몇 개를 꺼내어 미리 준비한 상토와 마당 흙을 적당히 섞어서 목화를 옮겨 심어주었다. 뿌듯했다. 목화들 새집마련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5월 초 크게 잘 자라난 목화 새싹들을 본가에서 옮겨심어주었다.

이렇게 옮겨 심은 화분은 양지바른 곳에 잘 두었다. 다만 더울 때 너무 햇빛을 많이 보아서도 안되기 때문에 적절히 쉴 그늘도 잘 생기는 본가 마당 수돗가 옆에 자리 잡게 했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가면 족히 한두 달은 다시 못 내려올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왜 나는 봉화에 살지 않는가 언제나처럼 자문하며 너무 간격을 좁게 심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시들시들한 새싹이 몇 개 보여서 걱정이 앞을 가렸다.


6,7월

본가에 내려가지 못한 6월 7월에는 엄마에게 부탁해 목화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무럭무럭 쑥쑥 자라는 목화의 모습이다. 제일 작은 화분에 심어두었던 시들시들한 새싹은 결국 유명을 달리했지만 10알 목화 중에 8알은 살아남았으니 스스로 김익점이라 칭찬해 주기로 했다.

6월 7월의 싱그러움을 간직한 목화 사진. 엄마 휴대폰은 갤럭시라 혼자 색감이 다르다.

9월

그리고 대망의 최신 근황이다. 9월 중순. 추석에 집에 내려가 목화를 보니 씨방이 잔뜩 맺혀있었다. 장성한 목화들이 옹기종기 살기엔 화분이 너무 비좁아 보여 마당 한 구석에 다시 심어주었다.

9월 둥그런 씨방이 곳곳에 달려있는 늠름해진 자태의 목화

9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목요일. 일찍이 휴가를 내고 본가로 빠르게 내려갔다.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에 바로 땅에 심어주었는데 그 뒤로 며칠 지나지 않아 씨방 하나에서 솜이 터졌다.

추석 연휴 끝물. 태어나 처음 수확한 목화솜.

목화솜을 살살 걷어내어 주자 그 안에서 씨앗 몇 알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이렇게 얻은 씨앗은 내년 봄에 또 똑같이 심어주려 한다. 난생처음 목화솜을 얻어보니 그 옛날 원나라에서 목화씨앗 몇 알을 가지고 온 문익점은 목화솜을 얻기까지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 상상하게 된다. 지난 몇 달간 10알의 목화씨앗이 목화로 자라는 걸 보며 몹시 설레고 기쁘고 가슴 졸였다. 목화 덕분에 서울과 본가를 넘나들며 행복했다. 이 기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식물의 세계는 경이롭다. 새싹은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잎의 모양, 줄기의 문양, 다 커서 생긴 모습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 다르다. 이름을 모를 때는 그냥 초록색 풀 1,2,3이었으나 이렇게 목화를 키워보니 앞으로 내 삶에서 적어도 목화는 초록색 풀 1,2,3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일방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목화와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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