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6. 2:19 에 쓴 글
서울에 사는 나는 눈뜨면 아침은 고사하고 헐레벌떡 출근한다. 사람 틈바구니에 낑겨 끙끙대다가 매일 새롭게 사람에 질리고 놀라는 내 가슴을 진정시키다 보면 아침이 끝나있다. 점심을 먹고 후다닥 일을 한다. 매일 직장에서 하는 소리가 이거다. "어머 벌써 4시야?, 뭐 했다고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요?" 마지막 한 시간 동안 끝마치지 못한 일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고 털레털레 아마도 가벼울 마음으로 퇴근한다. 그렇게 퇴근길의 파도에 몸을 맡기면 아침보다 더한 인파에 지쳐 나가떨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인간이 징글징글하고 얄미울 수가 없다. 내 탓이 아닌 건 알지만 인간을 지긋지긋하게 느끼는 나마저도 참 미워진다.
돌아오는 길에 맛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대충 때우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다. 요리는 무슨 저녁이라도 제때 챙겨 먹으면 다행. 그나마 요즘은 마음에 여유라는 게 개미 눈꼽만치는 생겨서 뜨개질을 하거나, 최근 새롭게 산 물로 쓰는 서예 키트로 흘림체를 연습한다. 추워서 운동은 패스. 그렇게 잠시나마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어머, 벌써 10시야? 이러다 조만간 관 짜고 누워있겠네?" 하고 빠르게 가는 시간에 깜짝 놀라 되도 않는 농담을 던진다. 시간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빨리 간다. 분명 하루는 24시간 아니었나? 체감 시간은 하루가 마치 열두시간인 것 같다.
간만에 집에 내려와 혼자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요 며칠 동안 하루가 24시간이었음을 몸으로 다시 배우고 있다. 오전 11시에 느긋하게 일어나 다 같이 먹을 크림파스타를 만들고 설거지도 했다. 집 정리도 좀 하고, 개 산책도 시키고 서현이랑 레나를 역으로 떨어뜨려 준다고 왕복 한 시간 운전도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느긋하게 웹소설을 읽고, 개들 밥도 주고, 밀려있는 일이 떠올라 한두 시간 정도 일도 했다. 일이 지겨워질 찰나 배가 고파 저녁도 해 먹고 또 설거지를 했다. 밥을 해 먹다 보니 급 냉장고에 넣어둔 강력분이 보였다. 집 내려와서 맨날 식빵만 굽는 게 좀 그랬는데 마침 요즘 빠져있는 치아바타 레시피를 발견했다. 치아바타를 굽기 시작했다. 45분, 30분, 30분, 40분 그리고 마지막 또 30분 발효를 하고 20분 동안 구워서 맛있는 치아바타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발효를 해야 하는 치아바타를 쳐다보며 아, 이거 서울에서는 해먹을 엄두도 안 나겠다 싶었다. 너무 쉬운 레시피인데, 요리도 맘만 먹으면 뚝딱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일을 서두르지 않고 할 수 있는데, 왜 서울에 사는 나에겐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같은 한국이 맞긴 한가?
욕조에 물을 받고 선물받은 빨간 입욕제를 물에 풀었다. 몸이 노곤노곤했다. 뜨거운 물이 찬 바람을 만나 김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치아바타를 하나 물고 배를 채우며 씻었다.
사위가 조용하다. 봉화에 밤이 찾아오면 적막과 고요가 사방에 내려앉는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 나의 숨소리, 새소리, 산짐승이 가끔 움직이며 흔들리는 나무소리, 개 짖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함이 이렇게 달달할 수 있나? 가능만하면 피켓들고 시위하고 싶다. 반틈으로 조각낸 내 시간 돌려내라 서울. 아님 일자리라도 봉화에 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