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세상]
1. 알고 보니 강박증이었다

by 기리니

아마 초등학생 저학년 때였을 거다.

가족, 친척들과 함께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한쪽 벽면에 걸린 메뉴판에 갑자기 시선이 꽂혀버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쭈욱. 나는 갑자기 일정한 호흡과 규칙적인 속도로 메뉴판을 속으로 되뇌었고, 중간에 호흡이 한 번이라도 흐트러지면 다시 메뉴판을 훑어야 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로.


또 그 시절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한참을 거울 앞에서 고통으로 서성여야만 했다. 심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한 손에 로션을 짜서 반대쪽 손에 묻힌 뒤, 왼쪽 볼에 한 번, 오른쪽 볼에 한 번. 그리고는 얼굴 전체에 규칙적인 손놀림과 속도로 로션을 발라야만 했다. 누구도 시킨 적이 없고 감시하지 않았지만 난 그래야만 했다. 오히려 그 순간을 누군가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패턴이 틀어지면 난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렸다. 결국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마음에 드는 완벽한 규칙에 적합하기 전까지는 그 행위를 끝낼 수가 없었다. 촉발요인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런 걸 따질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었다.


내 상태를 좀 더 병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난 20대 초반이었다. 이른 취업으로 일찍부터 사회에 뛰어든 나는 전공 분야에서의 역량을 계발시키기 위해 심리검사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다면적 인성검사(MMPI) 워크숍'이었는데, MMPI 검사는 개인의 정신질병을 파악하거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 수 있는 검사였다. 총 10개의 임상척도를 통해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알 수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7번(Pt) 척도가 유독 높게(임상적 유의미한 수준) 나타났었다. 7번 척도는 '강박증'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물론 이 검사 하나로 강박증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나는 내가 몇 년간 앓고 지내왔던 고통과 통성명을 한 듯이 매우 반갑고 카타르시스적인 희열을 느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나는 강박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30대가 되어버린 나는 여전히 불안과 강박을 삶에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현되는 양상은 달라졌지만 그 흐름은 '불안'이라는 그림자로 늘 나와 함께였다.

이 글은 내가 강박과 함께 살아온 삶을 풀어내는 동시에,

아무에게 말도 못 하지만 저마다의 세상에 갇혀 숨 막힐 듯한 답답함을 느낄 나의 강박 동료들에게 보내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