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세상] 2. 나에게로 갇힌 세상, 강박증

by 기리니

목이 아프고 가래가 평소보다 많이 끼고 마른 기침이 자꾸만 난다. 병원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전달받고 목 상태를 보시더니 이내 "감기네요"라며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는 감기약을 처방해주시면서 올바른 약 복용법을 설명해주신다.


질병에는 공통적인 증상들과 기준이 있고 의사들은 기준에 맞추어 환자들에게 진단을 내린다. 정신질병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울감을 느끼고 일상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해서 정신과에서는 모두에게 '우울증'을 진단내리지 않는다.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이런 기준들을 분류하고 매뉴얼화한 것이 'DSM(정신질병 분류 및 통계편람)'이다. 아무리 내가 우울함이 있다고 해도 DSM에서 나열하는 우울증 진단 기준과 부합하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는 확정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강박증도 마찬가지로 진단내릴 수 있는 매뉴얼화된 기준들이 있다.


DSM에 근거하여 강박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강박사고나 강박행동 혹은 둘 다 존재하며 강박사고는 (1) 또는 (2)로 정의된다.

1.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생각, 충동 또는 심상이 장애가 나타나는 동안 침투적이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경험되며 대부분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을 유발함

2. 이러한 생각, 충동 및 심상을 경험하는 사람은 이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려고 시도하며, 또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통해 중화시키려고 노력함 (강박행동을 함으로써)

...

B.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들어(하루에 1시간 이상),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

이하 생략


[출처 - 제3판 아동·청소년 정신병리학 (시그마프레스)]



나열된 증상들은 실제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나타나 나를 괴롭게 만들곤 한다. 이런 강박증은 잠시 해소가 되었다가 다시 또 튀어나오기도 하며 한동안 잠잠했다가 특정 부분에서 심해지기도 했다. 관련된 도서나 대학원 교수님께 듣기로 강박증은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기에 꽤 오랜 시간 병을 앓고서 나중에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황하게 설명된 전문가적 기준을 뒤로, 나는 강박증을 '나에게로 갇힌 상태'라고 느낀다. 강박사고나 행동이 발현되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사고와 행동에서 결코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나 같은 경우 때로는 강박을 처리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으로 마음이 지배당하고 말아버린다. 강박사고나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한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통제가 되었으면 병이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통제도 되지 않고 특유의 침투적인 속성으로 인해서 나는 늘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강박이라는 폭풍우는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고, 심할 때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라며 아침을 맞이하는게 괴로워지기까지 했다.


강박증은 아무도 몰래, 조용히 나를 뒤덮어서 나를 침잠시켰다. 그렇게 알음알음 나를 갉아먹고 내 세상 속에 나를 가두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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