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세상]
3. 아무도 모르게

by 기리니

"엄마, 기억나?"


내가 갖고 있던 마음의 어려움을 인식하기를 몇 년. 20대 중반쯤에 엄마한테 나의 강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당시 공방을 하고 있던 엄마의 작업실에서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현듯 과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게 강박증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건 꽤나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 말을 듣던 엄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렸을 때 네가 좀 유별나긴 했었는데, 그런 줄은 몰랐다."


워낙 똥고집에 억울한 것을 못 참는 당찬 어린이 었던지라 또래보다 유별나다는 것만 알았지 그런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내 강박은 타인의 눈에 그리 크게 튀지 않았다. 강박 행동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불안을 잠재울 수 있도록 집중의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조용히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강박들이었다. 철저히 나만의 세상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까이서 365일 바라보던 부모님이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강박 행동이 있었고, 20살 이후부터는 강박 사고를 갖고 있어."

"엄마도 강박이 좀 있는데."

"맞아, 사람들 모두 강박은 갖고 있어. 그치만 강박적인 성격과 강박장애는 다른 거래. 나는 강박장애에 더 가까운 것 같아."


고백하는 나의 인상이 부드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강박이나 불안에 대해 고백할 때면 대부분은 이렇게 의아해하거나, '나도 너와 같은 강박이나 불안을 갖고 있어'라는 동류의 공감을 따뜻하게 건넨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강박적인 성격과 강박장애는 다르다. 일상에서 불안감을 종종 느끼는 것과 불안장애는 다르다. 배가 부를 때까지 복스럽게 많이 먹는 사람과 목까지 차올라 토를 하면서까지 많이 먹는 사람을 똑같이 '잘 먹는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강박적인 성격과 강박장애는 둘 다 불안을 기반으로 하지만 드러나는 양상은 다르다. 강박적 성격은 완벽주의적 성향과 높은 인정욕구를 특징으로 보이고, 강박장애는 (자신이 원치 않는) 침투적인 사고와 불안이 특징이며 불안을 감소하기 위해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내가 관련 공부에 더 관심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괜스레 미안한 표정이 되어버린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저 이 아이가 꽤 많은 고생을 하며 혼자서 이토록 이겨내 왔었구나 하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저 알아봐 준 것만으로도 나는 참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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