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2026년 첫 메달, 챌린지 마라톤 완주

by September Sky

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클리셰인 원래 제목은 '사랑이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이다. 영국 르네상스 후기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John Donne의 시 The Good-Morrow에 나온 구절을 '쓸모의 철학' 번역가가 기가막히게 잘 옮겼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우습게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들이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은 항상 기대하고, 욕구가 있고, 욕망하기 때문이다. 춘천 마라톤이 끝나고 12월부터 시작한 훈련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매주 세 번 달리는데 두 번은 트랙 30바퀴 12km, 한 번은 조깅 10km를 달린다. 2주마다 하프와 32km를 교대로 달리고, 인터벌(빠른 달리기와 휴식을 번갈아 달리는 훈련)과 언덕을 한 달에 두 번 달렸다. 적절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유지하려고 모든 훈련에는 100미터를 18초 빠르기로 네 번 달린다. 혈액 순환이 순조롭지 않은지 손발이 유난히 차가워 겨울 훈련은 늘 싫었다.


점점 메달이 걸리는 횟수가 줄어든다. 달리기가 하도 유행이라 대회 티켓을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약하고, 아프고, 병들고,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한다. 건강하면 나쁜 일들은 줄어든다. 특별히 예쁜 메달을 보관하고 나머지는 박스에 담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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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언제나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만, 돌아온 그 순간에는 이전에 출발했던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떠났을 때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오는 그 매혹적인 느낌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메달이 주는 기쁨과 주로를 달린 기억만 간직하려고 한다. 언젠가 남는 것은 녹슨 메달이 아니라 다시 꺼내볼 때 미소를 주는 아련한 기억들이다. 오래 달리기를 하면서 점점 달리는 일 자체를 큰 덩어리로 보게 된다. 트랙을 아주 많이 달릴 때 코치의 착오로 한 바퀴를 더 세면 기분이 고소했고, 덜 세면 아니라고 우기기도 했지만 '지금부터 달리면 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기록이 맘에 들면 좋겠지만 그날 달리기에 나오기 전부터 달리고 돌아가서 하는 일까지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삶도 그렇게 바라보면 좋으련만,


다행히 날씨는 8도라서 춥지 않았는데 한강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대회에 나갈 때도 청바지와 후드티 -개발자 복장-를 입고 간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추워 보였는지 이자정자가 우비를 챙겨주고 등번호(Bib Number)를 가슴에 4군데 오핀을 꽂아 달아 준다. '조심해, 가슴 찌르지 말고.' 가방을 보관 장소에 맡기고 돌아오는데 뭐가 빠진 것 같다. 장갑과 커피 3 봉지를 가방에 둔 채로 돌아왔다. 갑자기 망한 느낌이 들었다. 출발할 때 기분이 신나는 것도 비슷하게 망하는 징조다. 32km 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 58분이다. 4시간은 적어도 넘기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집중하고 경계를 풀지 않았어야 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배울 수 없다.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 자체에 관한 일이라서 키우기도 쉽지 않다. 단순히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뿐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달리기였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마라톤이다. 남은 10km는 영혼이 빠져나가고, 육체가 가진 힘을 내는 엔진은 꺼진 상태고, 호흡을 맞춰주는 러너나 페이스메이커도 없었다. 주로는 안양천 합수부에서 양천구청, 광명을 지나 철산교 근처 2차 반환점을 돌아 나와야 한다.


우비를 여기까지 입고 온 탓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벗어 버릴까 하다 땀이 식으면서 추울 것 같았다. 바람을 이용하자고 생각해 우비를 뒤집어 입었다. 올 때 맞바람을 많이 받았으니 갈 때는 바람이 뒤에서 부니 우비에 공기를 불어넣어 앞으로 밀어주면 좀 쉽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 우비가 부풀어 앞으로 쉽게 나가는 때도 몇 번 있었다. 사실 이 생각에 몰두하느라 어떻게 한강으로 돌아 나왔는지 기억에 없다. 입고 온 정성이나 맞바람에 늦어진 것을 생각하면 크게 이득본 것도 없고 손해 본 것도 없다.


한강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한강공원 물빛무대 앞까지 남은 5km는 거의 탈진 상태로 들어왔으니 기록은 저조했다. 삶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좋은 달리기와 나쁜 달리기 모두 러너에게는 숙명이다. 기관에 소속된 선수를 엘리트라 부르고, 3시간 이내에 달리는 러너를 마스터즈 선수라 부르고 나머지는 그냥 일반 러너다. 풀코스를 달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힘들다. 고통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좋은 기록을 위해 3개 월을 훈련했고, 드디어 공식적인 달리기로 자신에게 남을 마라톤을 끝낸 것이다. 그 여정이 즐거웠으면 되었다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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