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ptember Sky Feb 01. 2019

마라톤의 사계(四季) - 여름

빗속을 달리는 우중주.

달리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언제든지 최상의 좋은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운동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편한 운동화와 반바지에 어울리는 티셔츠 차림으로 어디든 나가서 달려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다. 태어난 아기가 걷기까지는 3천 번을 넘어진다고 한다. 달리기에도 순서와 방법이 있고 수준에 맞게 달려야 하고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단순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큰코다친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멋진 사람이다.


   어떤 일을 이미 한 사람을 아는 경우 자신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불가능한 목표가 갑자기 가능한 목표로, 심지어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것이다. 부모, 형제자매가 배우나 운동선수인 사람들이 같은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옆에 있는 누군가 달리는 모습을 본다면 '야,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달리기는 지속적으로 달리는 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주위에 '너도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지?'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반가운 말이기는 하지만 '오래 달리려면 천천히 하시라'고 말해준다. 


  여름에 러너들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괴롭게 달린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맹렬하게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가며 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무더운 시즌의 혹한기 마라톤도 있고, 대회도 연이어 열리지만 여름의 강한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달리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4월부터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보통 풀코스는 없고 대부분 하프마라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뜨거운 낮 시간이 아니라 밤을 꼬박 새워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100킬로미터를 전부 달리지 않아도 된다- 4월에 달리기도 한다. 5월 초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햇살을 피해 달리는 본격적인 여름 러닝이 시작된다. 여름에 러너가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충분한 수분 섭취와 자외선 차단이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않으려면 차라리 달리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여름에 더위를 피해서 달리기 좋은 곳은 양재 시민의숲과 남산 순환산책로다. 누군가의 심장을 헤집고 다니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여름 훈련에서 서울의 심장 남산 순환산책로를 달리는 일은 매년 빠지지 않는 일이다. 남산 케이블카 아래 산책로를 왕복 4회를 달리니 총 25킬로미터를 달린다. 산책로 6.3km 거리를 왕복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길고 짧은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네 군데 있는데 이때 집중하지 않으면 페이스가 엉망이 되어 금방 지친다. 언덕에서는 특히 주의한다. 무릎에 강한 압박이 걸리지 않도록 내려갈 때는 천천히 달린다. 매주 화 목 훈련은 대공원 언덕 훈련을 한다. 과천역에서 대공원으로 가는 길 중간의 언덕을 올라가서 동물원 입구까지 경사로 왕복 약 1킬로미터 거리를 열 번 왕복한다. 무더운 날일수록 땀을 흠뻑 흘리고 함께 먹는 수박 맛은 일품이었다. 


   태풍과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비가 차지한다. 오늘도 비는 오락가락한다. 무거운 안개가 되어 내리다가 세차게 퍼붓기를 반복한다. 말로만 듣던 우중주를 할 생각에 약간 기대가 된다. 비가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옷을 갈아입고 체육공원 운동장으로 간다. 핸드폰과 차키를 비닐 봉투에 넣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맨다. 모자는 야간에 달릴 때는 쓰지 않는데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지만 내려 놓는다. 준비 운동을 하며 몸을 푼다. 하늘은 어둡고, 운동장의 라이트는 4곳에 있는데 한 곳의 라이트만 밝게 비추고 있다. 검은 구름이 무겁게 깔리고 벌써 서울 쪽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가볍게 조깅을 하면서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조금씩 비가 온다. 멀리서 번개가 번쩍한다. 먼 거리라서 그런지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온종일 내린 비로 고작 2명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 세 바퀴를 돌고 있는데 빗발이 굵어지며 본격적으로 쏟아질 채비를 한다.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서 거세게 쏟아져라'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과천 관문체육공원 운동장

  세찬 비로 옷이 모두 젖었다. 운동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위에서 내리거나 등 뒤에서 내리는 비는 별로 느낌이 없다. 조금 기울여 달리는 앞쪽에서 비를 맞거나 맞바람을 타고 내리는 비는 얼굴이나 온 몸이 따갑게 내리 꽂힌다. 머리에 맞는 비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수건을 머리에 묶었다. 바닥에 고인 빗물은 워낙 많이 쏟아지니 어느새 신발이 잠길 정도까지 트랙 레인 위에서 흐른다. 고인 물 위를 달릴 때는 척, 척, 척 소리 말고는 모두 빗소리에 가려진다. 트랙에 흥건한 물이 달리는 러너에 의해 양쪽으로 갈라진다. 홍해가 갈라지듯 러너는 바다 위를 달려가는 모습이다. 달릴수록 힘이 난다. 땀은 물과 섞여 떨어진다. 빨리 달리는 것 같은데도 비가 온 몸을 식혀주어 숨이 덜 차다. 오히려 물을 박차고 나가니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느낌이다. 비의 저항을 이겨내려 천천히 달리고 싶지만 의식할 수 없이 점점 과속이 되어 스피드가 붙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미친놈' 소리를 듣는 누구든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오히려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미친놈아! 란 소리가 몇 번은 나와야 재미가 있다. 때때로 그런 미친듯한 몰입이 한 동안 없을 때가 있다. 약간은 무료하고 심심한 날이다. 물론 우리가 약간 꺽여 생활하는 시절도 필요하다. 


더 달려야 한다! 오늘 빗속을 달리고 나서야 모두를 보았다. 마라톤의 사계절을 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달리는 내내 우리를 둘러싼 계절을 모두 보았고, 하나하나의 계절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 그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지만 특별한 것들을 보았다.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늘 무언가 배우는 아이와 같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 


그릇이 커야 담기는 물이 많이진다. 연못이 깊어야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우리가 큰 그릇이 되고, 깊은 연못이 되고, 깊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의 책임이다. 태어난 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존재보다 선행하는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과 상황,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를 지옥으로 몰아 넣는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니다. 온전히 도로를 진행하는 우리차를 들이받은 일은 우리 책임이 아니지만, 들이받고 난 다음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권한이기도 하고, 우리의 자유이기도 하다.-見河-

작가의 이전글 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