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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er Sky Oct 15. 2019

그래도 완주, 2019년공주 백제 마라톤 참가 후기

운명과 싸워 얻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다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대회가 2017 공주백제 마라톤이다. 지글지글 끓는 아스팔트 위를 얼마나 힘들게 달렸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2018년에는 다른 대회로 참가하지 않았고, 올해 다시 참가한다. 아침 6시 20분에 반려동료들과 함께 공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 12명이 함께 간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처럼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서 가는 길과 오는 길 모두가 좋다. 대회에 풀코스를 신청했고 4시간 안에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아직 물러가지 않은 태풍 링링이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완주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다.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대회가 2017년 공주백제 마라톤 대회다. 2월에 마라톤을 달리기 시작해 9월에 열리는 마라톤에 풀코스를 달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한마디로 멋도 모르고 달렸다. 32km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잘 달려왔지만 도저히 함께 달리지 못하고 보내야 했다. 페이스메이커를 보내고 혼자 터벅터벅 걸을 때 '내가 이래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슬프기도 하고, 얼마나 더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있다. 운이 좋지 않아 얻지 못하는 것들에 미련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 운명과 싸워 얻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다. 9시에 출발해 결승라인에 도착한 건 2시 10분(기록을 찾아보니 5시간 9분 5초)이었다. 지금도 당시 기록을 5시간 38분으로 알고 있는데 조회해보니 그렇게 늦은 기록은 아니다.


2019 공주백제마라톤 완주메달-앞으로 메달 사진은 이렇게 찍는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음은 들떠 있었다. 이미 sub-4(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한 러너로 성장했고, 다른 오래된 선배들이 하는 것처럼 조금은 여유 있고, 느긋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늘 그렇듯이 즐기고, 걷지 않고, 완주하기를 바랐다. '늘 그렇듯이'란 말은 아주 어렵다는 말이다. 한결같이 늘 그런 상태가 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아주 작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하게 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달성한 목표의 결과를 분명하게 남기고, 그다음 작은 목표를 정해야 한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꽤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작은 목표를 계속 이루어 가는 일이 나중에 큰 목표를 이룬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내린 작은 선택이 정말 중요한 선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동아일보사에서 이벤트를 내걸었다. 3월 서울동아마라톤, 9월 공주백제마라톤, 10월 경주 국제마라톤 3경기를 모두 참가하는 러너에게 '런저니'메달을 준다고 한다. 처음엔 별 욕심이 없었다. 3월 동아마라톤을 달리지도 않았다. 내 배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달렸지만, 내가 달린 기록으로 나왔다. 이번 대회를 참가하니 욕심이 생겼다. 공주백제 마라톤은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하는 코스로 악명 높고, 달리는 주로는 아주 지루하고, 여름 날씨에 하기 때문에 힘들기로 소문난 대회다. 보기에 좋은 아이디어로 이벤트를 주최하니 참여 인원이 적은 공주백제마라톤에 참가하는 러너들이 많았다. 10월 20일 경주 국제 마라톤 하나가 남았다. 아마도 광명에서 출발하는 KTX 5시 46분 기차를 정확히 한 달 전에 예매하고 신경주에 도착하여 택시로 경주시민운동장까지 가야 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니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6시 45분 차를 차고 가도 빠듯하다. 참가 인원이 많아 버스표도 가까스로 준비했다. 달리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모여서 달린다. 하프(보통 21km)까지는 함께 달리자고 한다. 초반에 속도를 아무리 잘 내어도 마지막까지 잘 달리기는 어렵다. 마라톤은 그런 운동이다. 한 순간도 따로 떼어놓고 하는 운동이 아니다. 긴 시간, 긴 거리 전체가 바로 마라톤의 모든 내용이고, 전체는 오직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시간에 나타난다. 자주 구간구간을 걸었다. 땀이 많이 나 물도 많이 마셨다. 달리기는 더 힘들어지는데 매 5km마다 있는 급수대에서 계속 물만 마셔댔다. 힘들게 결승점에 들어오니 5시간 00분 35초였다. 마음에 들었다. 즐겁게 잘 달렸다. 드디어 지나갔다.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별히 오래가지도 않는 좋은 감정이다. 대회에서 완주를 하고 안 하고는 러너의 마음에 환희와 우울감이라는 감정을 준다. 우울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더 신나고 즐겁게 지내기도 하지만 러너들은 누구나 상대방의 기분을 알 수 있다. 러너라면 공통적으로 겪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 갖게 되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보통 다음 대회에 완주를 함으로써 우울한 감정을 싹 씻어내기도 한다. 삶에서 최고의 성취감을 주는 운동이라 그런지 가끔 보면 러너의 우울함은 바닥까지 내려가는 좋지 않은 경험이다. 우울한 마음을 줄이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 화풀이할 곳도 없다. 오롯이 자기가 감내하고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러너들의 우울함은 좀 특별함이 있다.


  늘 달리고 나면 느끼는 마음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이 잘못되거나 망해가는 이유는 처음 마음을 잃었을 때다. 아무리 자신 있고, 목표가 뚜렷하더라도 적당히 겸손해야 한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해도 일정 정도는 겸손해야 한다. 아직도 마라톤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더 많고, 달려야 할 거리는 차고 넘치고,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들은 하지 못하고 우리는 했다손 쳐도 모두가 흐르고, 흐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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